'얼쑤!' '잘한다~'. 고수의 추임새에 구성진 판소리가 더욱 힘을 낸다.
그런데 여지껏 들어왔던 그 판소리가 아니다.
박연희(39)씨의 넘치는 신명에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현실이 묻어있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에 우리 춤, 우리 가락의 흥겨움을 입혀내는 마당극. 자그마한 그녀의 체구 어디에서 객석과 무대를 하나로 얽어가는 힘이 나오는 걸까.
박씨는 극단 '함께 사는 세상'(이하 함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이자, 작가이며 연출가다.
지난해까지 극단 함세상 대표라는 명함도 갖고 있었다.
그녀가 마당극에 몸을 담게된 건 대학 시절부터. 벌써 2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때 우연히 보게 된 두 편의 마당극이 그녀를 이끌었다.
"5·18 민중항쟁과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몰랐던 역사적 진실들을 연극이라는 형식을 빌어 표현해 내는 것도 놀라웠고 춤과 소리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연희 형식에도 매혹됐죠. 또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도 좋았구요."
그녀가 활동하고 있는 극단 '함께사는 세상'은 대구에서 유일한 마당극 단체다.
1995년 창단한 이래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마당극 형식으로 풀어내 왔다.
최근에는 '마당극 이어달리기'를 주제로 예전아트홀에서 1년에 걸쳐 공연 중이다.
박씨도 '아름다운 사람, 아줌마 정혜선'의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극단 함세상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전국 어디에 내놔도 작품의 질이 빠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마당극'과 '마당놀이'는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관객과 함께 어우러진다는 점과 전통 음악과 몸짓이 주를 이루는 점은 공통점. 하지만 마당놀이는 '홍길동전' '춘향전' 등 고전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반해 마당극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와 현실 참여가 주된 소재다.
"마당극에는 '마당정신'이 있습니다.
무대와 관객이 함께 즐기며 현실 문제를 고민하는거죠." 실제로 장애아의 어머니가 아이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작품 '엄마의 노래'를 3년전 특수아동 치료실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장애아의 어머니가 서로의 처지와 작품 내용에 공감한 나머지 모두 아무말도 못한 채 울기만 한적도 있었어요."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재미와 현실의 균형점을 맞추는 일이다.
현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좀더 대중적이고 유쾌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 "사람들은 뮤지컬이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팍팍한 현실을 잊곤 하죠. 하지만 주변이나 일상이 없는 웃음은 가벼운 도피에 불과해요. 그래서 공연을 보는 이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따뜻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
박씨는 그동안 '찾아가는 공연'에도 힘을 쏟아 왔다.
2002년부터 3년동안 벌였던 거리극 프로젝트는 그 일환. 통일 문제와 반전, 미선이·효순이 문제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들고 전국을 다니며 거리극을 펼쳤다.
지금까지 마련한 야외 무대만도 100회를 훌쩍 넘길 정도.
마당극은 창작이 기본. 또 1년에 한 두 작품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제작 기간이 길다.
그녀는 '엄마의 노래', '안심발 망각행', '지키는 사람들' 등 3편의 작품을 직접 썼고 9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전통 음악과 몸짓, 소리를 지향하는 것도 특징. "전통 연희는 우리 몸속에 흐르는 신명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개별화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적 신명을 불러일으키죠." 마당극은 관객과의 소통 여부가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도, 떨어뜨리기도 한다.
"대본에 관객을 위한 여백이 있어요. 관객의 시선을 직접 받고 확인해가면서 감정 표현의 강약을 조절하는 거죠." 하지만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관객이 들어서면 힘들기는 마찬가지. 특히 연극을 평생 처음 보는듯한 중년 남성들의 반응을 끌어내기가 가장 힘들다고. 박씨는 "마당극에 관심을 쏟는 후배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소박한 포부를 밝혔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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