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DP(지역내 총생산)는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경제지표 가운데 하나다. 일정한 지역 안에서 생산되는 최종 생산물의 합계로, 지역 경제의 실태를 지역별 소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최고로 각광받는 경제지표가 됐다.
GRDP도 그러나 '아픈 과거'가 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다.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1967년 처음 도입된 GRDP는 현재의 방식과는 다소 다르지만 '새마을소득' '주민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추계돼 지역별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이용되다가 80년 갑자기 사라졌다. 특정 지역의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제상황이 그대로 노출돼 지역 갈등과 민심 이반이 우려된다는 정치적 부담 때문이다.
GRDP는 89년부터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는 등장하자마자 지역별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의 특성 때문에 정치적인 용도에 자주 동원되고 있다. 대구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현 정권을 공격하며 내세우는 '지역 홀대론'의 주요 팩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것이다.
그러나 GRDP가 그 지역의 소득수준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대구에 사는 사람이 경산시나 구미'칠곡에 공장을 갖고 있거나 그곳의 회사에 다닌다면 그의 소득액은 경북의 GRDP에 포함되고 대구 GRDP에는 계상되지 않는다. GRDP 순위에서 대구'부산이 최하위권에 있는 반면 경북'경남이 최상위권에 있는 것도 상당부분은 이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대구의 GRDP가 전국 꼴찌라고 내세우고는 슬쩍 "다른 지역은 어떻다더라"고 덧붙인다. 대구 사람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선거때면 많은 사람들의 표심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시'도별 GRDP를 비교하면 가장 언짢아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들의 당 소속인 대구 시장이다. GRDP가 대구의 소득수준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아닌데도 시민들이 대구경제가 엉망이라는 것으로 바로 연결시켜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문희갑 전 시장이 가장 '핏대'를 높인 것 가운데 하나도 GRDP 이야기였다.
게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GRDP를 '지역 홀대론'의 팩트로 내세울 자격이 과연 있는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김대중 정권 이전, 김영삼 정권과 노태우 정권때도 대구는 이미 GRDP 꼴찌였다. 당시의 집권 여당은 한나라당의 전신이 아닌가. 그때,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나.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그들은 집권당이 아니지만 대구'경북에서는 의석을 독차지하는 사실상의 '여당'이었다. GRDP 꼴찌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지역 홀대론'을 주장하면서 GRDP를 드는 것을 보면 생뚱맞다는 생각이 앞선다.차제에 의원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경제지표를 들먹이면서 하는 '못산다' 타령을 이제 더 이상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대구의 경제사정이 엉망이라는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도 흘러간 유행가를 계속 틀 듯 '못산다'를 거듭하는 것은 대구시민들에게 상대적 소외감을 더욱 크게 하고 냉소와 자조의 주변부 의식만 키울 뿐 대구의 발전에 도움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대구시민들은 이제는 식상한 '못산다' 타령을 그만 두고 대구 경제 살리기를 위한 비전 제시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주위에서는 내년의 단체장 후보로 이런 저런 인사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상당수 의원들은 단체장 후보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중반의 역동적인 CEO를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니 기대해 볼 일이다. 그러나 내년에 뽑힐 단체장들이 2007년 대선과 무관할 수는 없는 만큼 당리당략에 따라 대구의 발전보다는 대선에서 큰 역할을 해줄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그래도 특정 학교 출신이라야…'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양당 모두 어떤 후보를 공천해도 좋다. 그러나 이 한가지만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4'30 영천 국회의원 재선거의 교훈'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번 단체장 후보 공천이 진정으로 대구를 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 대구시민들에게 평가받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허용섭 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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