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까작에서 쓰는 엽신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올 여름 휴가는 특별했다. 8박 9일의 카자흐스탄 의료봉사를 일 년에 한 번뿐인 휴가로 대신한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1992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로 땅은 우리의 27배나 되고, 광물과 석유자원이 엄청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본 그 나라는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상기시키는 그런 환경이었다. 숙소는 악사이(아름다운 백합)라는 이름의 교회였다. 우리를 위해 급하게 페인트칠을 한 모양이었지만 재래식 화장실에 온수는 어디에도 없고, 화장지도 무척 귀했다. 일인용 메트 위에 얇은 시트를 깔고 잠자리를 얻어 지냈지만 연일 40도를 넘는 무더위 때문에 열어두고 자는 문으로 쥐를 문 고양이가 드나들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낮에는 파리, 밤에는 모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정제되지 않은 휘발유 탓인지 거리에는 매연이 심했고, 실내나 자동차에도 에어컨을 거의 쓰지 않았다. 선풍기 몇 대, 혹은 작은 창으로 이따금씩 불어주는 바람에 의존해 환자 787명과 미용봉사로 145명을 만났다. 진료는 물론 의료팀의 몫이었지만 많은 봉사자들이 진료를 도왔다. 또 통역, 접수 및 안내, 식사 당번, 이동시 운전해준 분들, 숙소에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일해 준 현지인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만난 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배운 것은 삶의 가치는 삶의 조건에 절대적으로 지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거 스탈린시대 때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생존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을 보아도 생명은 삶의 조건에 달려있지 않은 것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의 삶의 조건은 너무도 열악했지만 그 열악함 속에서도 역동하는 생존을 느꼈다. 한줄기 바람에도 고마워했고, 들꽃들의 흔들거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자족했고, 몇 바가지의 따듯한 물만으로도 행복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작은 일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는 우리 자신들을 느끼면서 그때 비로소 우리가 지금, 여기, 이렇게 놓여진 이치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베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그들로부터 배워가는 길임을 깨달았다.

이상경 오르가니스트·공간울림 대표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경찰이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 관련 민중기 특검팀의 직무유기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면서 정치권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특검은 2018~2020년 ...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음란행위를 한 80대 남성이 검찰에 송치되었으며,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목격자의 촬영 영상을 근거로 수...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