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도시라는 대구에서 아주 늦었지만 대한민국 학술원상 첫 수상자가 나왔다. 바로 권병탁(76· 팔공산 송광매기념원장) 영남대 명예교수이다. 전통 천연염색을 하는 솜씨좋은 아내 송수희씨와 팔공산 덕곡동 송광매기념원에 사는 권 교수는 자료가 거의 없던 한국의 전통 공업, 상업, 길쌈, 도자기, 쇠부리, 대구약령시 등에 대한 창조적 연구성과로 2005년 제50회 학술원상 인문사회과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9월 16일.
◇ 자생적인 수공업과 농업에 지닌 관심
그는 부지런하고 소박한 농부 같다. 대학교수라는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우리 땅을 파고, 전통 수공업을 연구한다. 쇠부리, 야생씨매실, 대구약령시에서부터 일제징용자까지 연구테마가 무한하고, 그 내용은 독창적이며, 고증을 뒷받침한다. 무엇을 잡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어떤 핍박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는다.
희수를 한해 앞둔 지금까지 식민사관에 젖은 학자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가 식민학자들이 대구약령시가 국왕의 명령에 의하여 청나라에 조공할 약재를 수집하기 위하여 형성됐다고 단정한 곡학논리를 뒤집은 것.
"대구 약령시는 철저히 수요 공급의 시장논리에 의해서 생겨난 계절시장입니다. 나중에는 추령시만 남았지만이 약령시에서 시장경제와 한국자본주의의 싹이 움텄습니다."
처음에는 조공을 위한 약령시로 보던 시각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제는 약재가 필요한 소비자와 약재를 생산하는 상인이 서로 만나 사고팔던 곳이라는 권 교수의 주장이 대세이다. 대구 약령시 연구로 다산경제학상(1986년)을 수상키도 했던 권 교수는 우리 역사에 내재한 근대성을 제대로 보고 짚어냈다.
◇ 일찍 싹튼 자본주의, 봉건과 식민통치로 좌절
17~18세기에 싹텄던 자본주의적 요소가 19~20세기까지 승계발전되지 못한 것은 18세기 들어서면서 강격하게 대두된 봉건적 반동, 세도정치, 그리고 식민통치의 무자비한 횡포 탓이라고 권 교수는 주장한다.
"농부가 부지런히 일해서 많은 수확을 앞두고 있으면 권세 가진 사람들이 이유없이 가둡니다. 답답한 농부가 정성껏 기른 소 한 마리를 팔아주면 그때사 모르는 척 풀어줍니다. 이런 일이 잦으니 누구도 부지런히 일해서 돈벌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지요. 지도자와 가진자 배운자들의 잘못이지요. 또 우리는 이익을 좇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가르친 데 반해, 서양에서는 나쁜짓 말고는 다하라고 가르치니 부(富)가 어디로 더 몰려오겠습니까?"
◇ 우리나라 철생산은 이미 기원전에 시작
성주에서 태어나 경북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친 권 교수는 학창시절에 배운 실사구시 정신을 평생 실천하면서, 전통제철산업인 쇠부리 연구에도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다.
"최근까지 대장간을 쇠부리 일의 전부라고 오인했지만 그것은 쇠부리 작업의 최말단에 속하는 가벼운 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그는 올바른 쇠부리 일은 쇠부리(용광로) 무질부리(주물) 대장간이 연계돼야 가능하며, BC 4~3세기에 이미 대륙으로부터 철제 이기와 철생산 기술이 도입되어 있었으며, 한반도에서 철을 생산, 사용, 교역하였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펴낸 '한국산업사연구'(영남대출판부)에 자세하게 담겨 있다.
◇ 사기장이 맘에 안 드는 백자 부술 여유 없어
일본 사람들이 조선백자가 좋다는 얘기는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기장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일본인들은 조선 사기장이 부지런하고 정직해서 장인으로서 구워낸 백자가 맘에 안들면 때려부순다고 했습니다만 아닙니다. 때려부술 정도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옆구리 들어간 것, 유약이 흘러내린 것, 형태가 찌그러진 것도 쌀 반 되 받고 줍니다. 내버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지요."
지난 83년 전통도자기연구로 한국경제학회상을 수상한 권 교수의 지론이다. 80년대부터 일본의 우매보시를 능가하는 전통 야생씨매실 보급에 나서서, 86년에는 야생씨매실보급운동본부를 발족시켜 웬만한 대구시민 치고 권 교수의 매실을 선물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권 교수는 매실농장에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다.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잡아먹는 천적을 이용하는 농법이다.
◇ 권 교수의 해직때 홧병 얻은 어머니 운명
"나는 평생 일을 저지른 것 같아요. 큰 바위를 깨야 모래도 얻고 자갈도 나올 거 아니에요. "
권 교수는 5·16 때 자신이 해직된 사건으로 인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평생 죄밑이 된다. 권 교수의 송광매기념관 옥상에는 오물(五物)방이 있다. 사물에 나발이 더해진 오물이다. "어릴 때 농사가 잘 되기를 빌면서 꾕말놀이를 했는데 그게 농악의 본령이에요. 쿵작작 쿵작 치는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김덕수 사물패가 놀고 있는 것을 보면 목부러질까 걱정돼요. 우리 사물놀이는 그렇게 놀지 않거든요. 보고 있으면 흥이 나서 절로 주척거리게 되는 것, 그게 사물놀이요."
권 교수의 오물은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문화재급의 가치를 지녔다. 대명동에 지었던 농업박물관이 뜯겼을 때 사흘밤낮 입맛을 잃었던 권 교수의 송광매기념관은 염색체험학습관과 토요강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글·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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