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폭탄주

1900년대 초기 미국 동부 지역 탄광과 부두 제철 공장 등의 노동자들이 맥주에 위스키를 섞어 마셨던 게 폭탄주의 시작이라고 한다. 적은 돈으로 빨리 취한다는 매력 때문이었다. 온몸을 취기로 끓게 하는 술이란 뜻에서 보일러 메이커로 불렸다. 미국에서 시작한 폭탄주가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됐다. 제조 기법과 종류도 수십 가지로 늘어났다.

◇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강원도 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진다. 이후 기관장들이 전근을 다니며 전국으로 확산시켰다고 한다. 폭탄주의 확산에는 1986년 국방위 회식 사건이 일조를 했다. 임시 국회 개회 후 마련한 회식 자리에서 육군 장성들이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을 두들겨팬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일반인들에게 폭탄주에 대한 호기심을 불렀다. 폭탄주로 빚어진 난투극이 폭탄주의 대중화를 부른 셈이다.

◇ 최근 몇 달 새 폭탄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이어졌다. 시장과 함께 폭탄주를 마신 인천 시의원들의 난투극을 시작으로 현직 검사가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되는 희한한 일이 빚어졌다. 타고 가던 택시를 만취 상태에서 훔쳐 몰던 현직 판사는 고속도로상에서 붙잡히기도 했다. 폭탄주를 마신 국회의원과 기자 등이 빚은 해프닝도 이어졌다.

◇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폭소(폭탄주 소탕)클럽 결성에 가입을 신청한 의원은 30여 명, 참여 의사를 전달한 의원도 2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경제부총리가 회원이 되겠다고도 했다. 다음주 출범 목표인 폭소클럽은 창립 취지를 통해 '맑고 깨끗한 청정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정신과 육체를 해치는 획일주의적 폭탄주 문화부터 정치권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폭탄주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군사 시대 획일주의 문화의 잔재' '남성 중심 상명하복의 권위적 문화' '불안한 맨정신을 빨리 벗어나려는 일종의 자폐증'이라며 비난한다. 만취 상태에서 각종 사건을 부르는 화근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폭탄주 예찬자도 만만찮다. 누구나 공평하게 마신다는 점을 내세운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술을 사고 마실 수 있는, 술에 관한 한 천국인 우리나라에서 폭탄주의 추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폭탄주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적게 마시는 요령을 익히도록 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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