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8월 15일 자정 무렵, 무의식적인 사마디(三昧)로 빠져들었던 라마크리슈나가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배가 너무 고프다"고 말했다.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아 죽 한 그릇을 별 불편없이 비웠다. 안심한 제자들에게 "다시 기운이 나는구나"고 말하는 그에게 곁에 있던 나렌드라나드는 잠을 자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라마크리슈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칼리 여신의 이름을 부르고는 천천히 누웠다.
오전 1시경 그의 몸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눈동자가 코끝을 향하여 고정됐다. 얼굴은 온화한 미소로 가득찼다. 사마디에 다시 빠져 든 것. 간병인들은 그냥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불려온 의사는 그의 몸이 아직 따뜻한 걸 발견하고 등을 문질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정오 무렵 찾아 온 다른 의사는 그의 죽음을 선고했다.
1887년 8월 16일 오후 5시, 라마크리슈나의 몸은 황갈색 옷이 입혀져 백단향 가루와 꽃으로 장식됐다. 그리고 코시포어의 강가 계단에서 화장됐다.
"힌두교의 전통을 현대에 살려 인도 사람들의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모든 종교의 조화를 설파, 인류협동의 이상을 드높인" 인도의 성인 라마크리슈나의 최후였다.
▲1904년 친일단체 '진보회' 결성 ▲1966년 제네바협약 국내서 발효.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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