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승용차 시장을 처음 열었던 새나라자동차 공장 제1단계 준공식이 경기도 부평(현재 대우자동차 공장)에서 1962년 8월 27일 열렸다.
새나라자동차는 5'16 혁명 정부가 세운 국가재건 방안의 하나로 시작됐다. 국내 자동차공업을 키우기 위해 혁명정부는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을 제정해 공포했다. 관계법령 선포 뒤 정부는 해외 자본 국내투자라는 명목으로 재일교포를 끌어들여 새나라자동차 회사 설립을 허가했다.
첫 국산차 "시발차가 망할 것"이라며 반발도 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은 굳건했다. 미국과 일본'독일의 자동차 회사에게 기술이전 요청을 거절당해 더욱 다급한 시점이었다.
무리수가 많은 사업인 만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 닛산자동차 61년식 블루버드 P310형 400여 대 완제품을 들여오는데 면세 특혜를 주었다. 관광용으로 허가된 차량 400대는 1962년 5월 아시아영화제를 빌미로 일반택시로 등급이 조정됐다. 업계의 반발은 쌓여만 갔다.
새나라자동차 설립은 워커힐 신축, 증권파동, 빠찡꼬 부정 도입 사건과 더불어 당시 국내 4대 의혹사건으로까지 떠올랐다.'한국 자동차공업의 현대화 기수 역할'이란 명성 치곤 너무 엇나간 것이 아닌지….
▲1882년 대원군, 청에 강제 피랍 ▲1991년 택시요금 거리병산제 확대 실시.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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