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천사 선생님' 의 장애 형제 그림자 사랑

안동 풍북초교 병설유치원 오춘희 교사

"명현이 말문이 열리던 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명재도 꼭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기다립니다."

안동 풍북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오춘희(43) 교사는 올 봄부터 보살펴 온 명재(6)·명현(5)이 형제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들 형제는 정신지체장애를 겪고 있다. 같은 장애인인 아버지 김창일(45) 씨, 어머니 황칠선 씨와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미내미' 마을의 허름한 촌집에서 살고 있다. 성치 못한 몸과 가난이라는 겹 고통을 안고 살아가던 부모가 이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형제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았고 지금껏 엄마, 아빠라는 말도 못한다.

올해 초 이 학교 권오석 운영위원장이 이런 딱한 사정을 알고 부모 대신 주민등록을 만든 뒤 조주영 교장에게 간청해 병설유치원 입학을 허락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는데다 용변조차 못 가렸기 때문. 이때 오 교사와 장설희(46) 보건담당 교사가 흔쾌히 이들 형제의 손을 잡아 주었다.

매일 용변을 치우고 씻겨 옷을 갈아 입혔다. 급식을 챙겨 먹이고 코앞에서 마주 보며 말을 가르쳤다. 유치원에 등교하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두 교사는 형제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보살폈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이들 형제에게서 드디어 변화가 나타난 것은 유치원에 입학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주 초부터. 드디어 명현이가 말을 하고 용변을 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 교사는 "간단한 단어를 어눌하게 따라 하는 수준이지만 이제는 유치원 생활에 보다 더 잘 적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두 교사는 가족까지 챙겼다. 가족 모두가 장애인이었지만 법을 몰라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지난 6월에는 읍사무소로부터 보조금을 받게 했다. 이번 주에는 선천성 사시로 시력을 잃어가는 명현이에게 새 빛을 찾아주기 위해 안동의료원과 안동시보건소에 무료 교정시술 지원 수속을 밟고 있다.

장 교사는 "아이들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힘든 줄 모르겠다"면서도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학교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도와줄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두 교사의 이런 정성이 학교와 마을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명재 형제가 아버지가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유치원에 오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창가에서 손을 흔들며 맞아 줍니다. 선생님들과 주민들은 옷가지를 전해주지요. 우리 이웃들이 명재 형제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주고 부모도 하기 쉽지 않은 일을 해 온 두 교사에게 따뜻한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조 교장의 당부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msnet.co.kr

사진: 명재와 명현이가 유치원에 갈 때는 온 가족이 함께 경운기를 타고 나선다.(경운기를 운전하는 아버지 뒤로 명재·명현이, 어머니. 맨 앞이 막내 명훈이다) 오춘희·장설희 교사는 "별로 한 일이 없다"며 사진촬영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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