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양북면 봉길리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지역으로 결정되기 무섭게 전국의 부동산 투기꾼들이 경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지 주민들은 외지에서 몰려든 이들은 두고 "어찌나 빠른지 도깨비 같다"고 했다. 부지선정 사흘만에 "차를 천천히 몰고, 선글래스를 끼고, 한 손에 지도(도면)를 든 사람들은 전부 외지 투기꾼"이라는 기본 모델까지 나왔을 정도. "이대로 두면 투기꾼들 때문에 정상적인 사업도 차질을 빚고, 주민들 가슴에는 바람만 들게 생겼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경주로, 경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역시 한수 빨랐다. 경주 모대학 김모 교수는 3일 오전 서울사는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경주가 뜰 것 같은데 어디가 좋을 지 정보도 좀 수집해 주고 이왕이면 괜찮은 '물건'도 좀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나만 그런게 아니고 주변 동료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며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7, 8년만에 연락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앉아서 연락을 기다리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은 점잖은 편이다. 5일 오전 9시쯤 양북면사무소에서 방폐장 부지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한수(36) 씨는 "평소에는 잊을만하면 차가 한대 지나간다고 할 정도로 한산한 길인데 엊그제부터 승용차 통행량이 크게 늘었다"며 "봉길리(방폐장 부지)가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방폐장 길목인 문무왕 수중릉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은 "2일까지는 대왕암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그 다음날 부터는 '방폐장 부지 관광객'이 훨씬 더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들끓는 양북면
지난 주말(5일)과 일요일(6일) 이틀 동안 양북면은 사람과 차량의 통행량이 이전보다 좀 늘었다는 것 말고는 겉으로는 평소와 크게 다를바 없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딴판이다.
양북면 장항리 주민 강신훈(51) 씨도 "지난 3일 아침부터 고급차를 타고 도면(지도)을 들고 들판길을 누비는 이들이 생겨났다"면서 "이웃들 중에는 외지에 사는 친지들로부터 땅 좀 봐달라고 전화받는 사람이 많다"고 마을 분위기를 소개했다.
양북면사무소 직원 정의찬 씨는 "땅을 사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팔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며 "방폐장이나 한수원 본사 건설 등 계획이 구체화 될 때까지는 주민들도 지켜보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전체적으로 땅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도 했다.
주민투표를 앞두고 찬반이 팽팽하게 갈렸던 만큼 향후 전망도 정반대인 것이 현지 여론이다. 한 50대 주민은 "반대표를 찍은 사람은 땅값이 내릴 것으로 보고, 찬성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재 분위기는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초까지 지켜보자는 쪽"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방폐장 부지는 확정됐지만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는 어디에 어떤 규모가 될지를 가장 큰 변수로 보고 있었다. "이것(한수원 본사)이 확정되면 한번은 난리를 겪을 것"이라며 투기열풍을 예상했다.
4일 오후 1시쯤 감포읍과 양북면의 경계지점에 있는 한 횟집. 손님이 많았다. 주인은 "주말이라 손님이 좀 있는 편인데 평소 토요일과 비교해도 오늘은 장사가 더 잘되는 편"이라고 했다. 바닷가쪽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 가운데 경주차는 드물었다. 이웃 횟집 주인은 "울산과 양산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대구, 포항, 부산 사람들, 서울 손님도 제법 있다"고 했다.
◆정중동의 천북면
방폐장과 한수원 본사외에 또 하나 '큰 건'인 양성자 가속기에는 안강, 강동, 천북 등 북 경주권이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방폐장 유치전 과정에서 '양성자는 천북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어 이 지역 주민들도 기대섞인 눈으로 앞으로의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주민 황인용씨는 "울산, 포항쪽 사람들이 기웃거리기는 하지만 아직은 잠잠한 편"이라고 했다. 황씨는 "이쯤되면 빠른 사람들은 쳐들어 오는게 보통인데 비교적 잠잠한 걸 보니 아직 양성자에 대해 확신을 못가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농사 지어야 남는게 없는데 자식들 진학시키고 시집·장가 보내려면 땅이라도 팔아야 하는데, 이 참에 우리 동네에도 그런 복이 올라나…"며 방폐장 후폭풍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