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 국왕 조지 4세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사신이 옥수수 얘기를 하면서 '콘(corn)'이라고 하자 그게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물었다. 옥수수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이므로 재배해 본 적이 없는 영국에서는 그 단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건 당연하다. 요즘은 그 정도쯤은 그야말로 아득한 옛 얘기다. 인터넷이 대량 보급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단어들이 쏟아진다. 기호화되고 축약된 단어와 신조어들이 봇물을 이룬다.
◇중년 이상의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철부지'로 보는 경향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들은 흘러볼 수 없게 한다. 우리 사회의 밝음과 어둠을 첨예하게 풍자하거나 병리 현상을 꼬집고, 위기 의식까지 동반하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상에 맞춰 끊임없이 양산되면서 세대간 격차를 더욱 벌려 놓기도 하지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올해 취업 시장과 직장에서는 세태를 빗댄 갖가지 신조어들이 난무했다. '채용 포털 커리어'의 조사에 따르면, 새로 등장하거나 유행한 신조어는 부지기수다. '갤러리 족' '올드 보이' '공시족' '신 기러기족' '샐러던트' '나토족' '배터리족' '체인지족'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대부분이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졸업을 늦추며 구직에 매달리는 '올드 보이', 공무원 채용 시험을 계속 준비하는 '공시족'은 취업 관련 신조어다. 직장을 그만두고 지방 의'약'한의대에 다니는 '신 기러기족', 실직'퇴사 이후 재충전하는 '배터리족'도 비슷한 경우다. 행동보다 말뿐인 '나토(No Action Talking Only)족', 공부하는 직장인 '샐러던트', 취업해도 적성에 안 맞아 구경꾼 같은 '갤러리족', 실직으로 아내와 역할이 바뀐 '체인지족'은 또 어떤가.
◇올해 초 국립국어원이 실생활에서 통용되는 신조어 626개를 담은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조출잔업(해고되지 않으려고 일찍 출근하고 잔업도 자청한다)'과 같이 풀이가 어려운 말들이 적잖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국가 사이 사회'문화적 장벽이 느슨해지면서 '혼혈어'들이 '구르는 눈덩이'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젊은이들이 쏟아내는 신조어들이 우리 사회의 아픔과 그늘의 기호와 같아 씁쓰레해지곤 한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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