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부활하는 부시의 대북 강경책

부시 행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북한의 위조지폐 유통 혐의에 대해 금융제재를 부과하고 이에 협상을 거부하는가 하면, 유엔 총회의 대북 인권결의안 및 제2회 북한인권대회를 계기로 인권 문제를 다시 쟁점화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핵 협상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12월 초 AP 통신과의 회견에서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의 진전을 원한다"며, 성과 없는 회담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12월 들어 잇따라 "북한은 범죄정권"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특히 그는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달라는 한국 측의 요청을 비웃기라도 하듯 "범죄정권" 발언을 계속했고, 미국 국무부는 미국대사의 발언은 "북한 관련 발언은 미국의 정책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아울러 버시바우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기하면서 남북경협에 신중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하고 나섰다. 이 발언은 정동영 장관이 개성공단 사업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직후에 나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부시 행정부가 대북강경책을 통해 '우파의 단결'을 모색하기 위한 '국내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일련의 흐름은 이러한 분석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은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강경파의 반격은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왔고, 9'19 6자회담 공동성명 채택을 계기로 강경파가 다시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강경파의 네 가지 수법

9'19 공동성명 채택을 전후해 미국 내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흐름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6자회담 공동성명 '폄하하기'이다. 대북강경파들은 미국 언론을 통해 공동성명에 북핵 폐기 일정과 검증 방안, 그리고 우라늄 농축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반면에, 경수로 제공 문제가 포함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이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실책"이라며, 대북협상파인 힐을 고립시키고 있다. 아울러 힐의 방북을 가로막음으로써 북미 직접대화에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둘째, 북핵 문제 이외의 사안을 가지고 '북한 때리기'에 나서는 것이다. 북한의 위조지폐 유통 혐의를 이유로 금융제재를 가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연루되어 있다며 11개 북한 기업의 자산을 동결시킨 것이 이에 해당된다. 아울러 최근 또다시 북한 인권문제를 전면화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북강경책을 통해 북한을 악마화하고, 이에 대해 북한이 반발하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포기에 따른 '기대효과'를 크게 반감시키는 발언을 함으로써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한 달 만에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해도 관계정상화를 할 뜻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관계정상화와 핵포기를 맞바꾸는 협상을 원하고 있는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6자회담 프로세스를 위태롭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끝으로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미국 주도의 한미공조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이고 균형적인 외교를 추구해온 한국에 대해 '길들이기'에 나서는 것이다. 국내외 보수적 NGO들이 주관한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북한인권특사와 미국 대사를 참석시켜,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 기권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대북포용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는 국내의 보수파에게 힘을 실어주어 한국의 대북정책 추진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아울러 미국 상무부의 전략물자통제 체제를 활용해 남북경협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 역시, 한국의 대북정책의 아킬레스건에 해당된다.

물론 미국의 이러한 대북강경책은 한계가 있다. 미국의 희망과는 달리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시키고 있고, 북한의 경제난도 점차 완화되고 있으며, 국내외 강경파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강경파의 희망대로 북한을 고립'굴복'붕괴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강경책이 계속되면, 북미관계 및 한미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해진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할 2006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