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사회적 맥락이나 공적 중요도와는 하등 상관없이 순위는 생각나는 대로 시비는 일절 접수 거부하는, 2005년 10대 사건 사설 순위표다.
1. 15킬로 감량
98년 7월 내 방에서 딴지일보 시작해 꼬박 1년 동안 프로그램, 디자인, 코딩, 취재, 기사, 게시판, 서버 관리까지 혼자 하느라 평균 20여 시간씩 PC앞에서 보냈다. 1년 만에 25킬로 불었다. 7년 후인 올 봄 어느 날 결심했다. 살 빼자. 이럴 땐 아무래도 어떤 일로 심히 충격 받는 사건 같은 게 있어 줘야 서사구조가 나오는데, 그런 건 없다. 그냥 멀뚱히 결심. 복잡한 건 질색인지라 그냥 그날부터 저녁 안 먹고 달리기 시작. 2달 만에 15킬로 감량. 다들 궁금해 한다. 그 비결. 간단하다. 어제는 뛰었으니까, 오늘은 피곤하니까, 내일은 일이 있으니까. 나에게 아무런 핑계도 안 대기. 교훈 : 내가 날 가장 많이 속인다.
2. 금연 만 5년 도달
하루 3갑 골초였으나, 2000년 1월 초 어느 날 아침, 역시 별 사건도 없이 불현듯 향후 5년간 금연 결심. 왜 5년인가. 없다. 그냥. 그날 이후 만 5년이 되는 2005년 12월 말 현재까지 단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다. 역시 다들 궁금해 한다. 그 비결. 또 한 번 초간단. 내가 금연했음을 스스로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것. 혹여 다시 피우지 않을까, 3주째가 제일 힘들다는데, 술자리를 조심하라는데, 다시 피우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또 시도해야지… 이런 생각 따위 안 한다. 그냥 난 금연했다 고로 담배 안 피운다 끝. 이렇게 너무나도 철석같이 믿어 딴 생각이 안 나는 수법. 그러나 내년부터 다시 피우기로 했다. 이유는 없다. 교훈 : 담배를 끊을 순 없다. 평생 참을 뿐이다.
3. 황빠 전락 사건
서울대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가 저지른 명백한 몇 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건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알지 못한다. 언론 따라 가지 마라. 지금 언론은 자신이 보도하고 있는 내용의 과학적 경중을 스스로 가늠할 능력이 없는데다 초기엔 친황우석으로 이제는 반황우석 바이어스가 걸려, 의처증환자 된 지 오래다. 고도의 정밀한 실험환경에서의 일을 단순 일반론으로 추론해 단정하지 마라. 지금 구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건 명백하다. 이건 국익론과는 무관한 소리다. 근거? 그냥 직관. 이렇게 말하다가 요즘 지인 커뮤니티에서 퇴출당할 위기다. 교훈 : 직관 함양에 더욱 힘쓰자.
4. 박지성 첫골
올 3월 PSV 에인트호벤의 박지성에게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콜 들어간단 소식 때만 해도 그저 그런 팀인 줄 알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란다. 에이, 했다. 6월 22일 맨유와 협상타결이 발표됐다. 세상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니. 판타지팀, 그 맨유가 지성이 홈팀이라니. 축구팬 아니면 감 잘 안 온다. 그게 어떤 건지. 이건 정말 대단한 거다. 8월13일 개막전 전반 45분 동안 선발 출전했다. 뿌듯했다. 12월 21일 버밍엄시티와 칼링컵 8강전 후반 5분 첫 골을 쐈다. 이 골 장면 새벽 5시부터 깨어 라이브로 봤다. 울컥했다. 국내 프로팀조차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던 저 작은 체구의 짧은 다리 여드름 청년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저기까지 가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스콜스 패스 안 하지, 죽는다. 교훈 : 숏다리 비관말자.
5. 그 외
도둑이야 외쳤더니 도둑은 놓아 주고 소음 공해로 처벌하는 멋진 X파일 사건, 상류와 연결은 없고 도심 한복판서 갑자기 한강 물이 치솟아 흐르는 분수형 청계명박수로, 중국산 무시하고 함부로 굴다 본전도 못 건진 기생충 김치, 군사훈련 받은 소대장에게 정신과 전문의까지 하라는 연천총기사건 마지막으로 꼬추 한 번 노출로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의 최대치를 측정 가능케 한 카우치. 교훈 : 다이내믹 코리아.
사설 10대 리스트 작성해 보시라. 한 해와 이별이 좀 쉬워진다. 특히 교훈을 반드시 새기면서. 그럼, 새해에는 복 제법들 자시길. 졸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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