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는 이맘때면 누구나 느슨해진다. 지난해 딱 이때쯤, 새해계획을 세우며 다졌던 굳은 다짐.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 하지만 어쩌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긴장이 풀어졌다.
이럴 땐 겨울바다로 갈 일이다. 고추바람이라 한들 어떠랴. 바람이 맵고 독할수록 겨울바다다운 법. 한해 동안 느슨해진 다짐을 다지는 데는 겨울바다가 제격이다. 다시 팽팽한 긴장을 불러오는 데도 그만이다. 영하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 떠나는 겨울여행이라 낭만은 덤이다.
통영의 미륵도 산양일주도로는 그런 겨울바다 여행코스에 딱 맞다. 다도해의 푸른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 해안을 따라 굽이도는 드라이브 길 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 높이와 비슷한 도로를 따라 수평선과 눈높이를 맞춰 달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 승용차 문을 열면 파도소리를 들으며 내달릴 수 있을 만큼 바다와 가깝다. 때마침 진주~통영 간 고속도로도 지난 12일 완전 개통되면서 대구에서 가는 시간도 30분 이상 단축됐다.
통영시내와 연륙교인 통영대교로 이어진 미륵도로 향한다. 대교를 지나 우회전하면 바로 산양일주도로. 바다는 금방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본격적인 드라이브길은 연화도, 욕지도행 유람선이 있는 삼덕항부터. 삼덕항을 지나 언덕배기를 돌아서면 한려해상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흩뿌려진 섬들 때문에 바다라기보다 큰 호수 같다. 하지만 감탄하기엔 이르다. 이곳부터는 갈수록 경치가 좋아진다.
산양일주도로의 핵심은 달아공원. 달아공원은 한려수도를 배경으로 넘어가는 일몰이 장관이다. 조그만 정자인 관해정에 오르면 일몰뿐만 아니라 시원스럽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속에 점점이 뿌려진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작은 바위섬에서부터 대·소장도, 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연대도, 추도에 멀리 욕지도까지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아공원 바위 위에 선다.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옷깃을 여며도 파고들 만큼 차지만 바닷바람답지 않게 맑고 깨끗하다. 그래서 느슨해진 마음가짐을 다잡기에 겨울바다보다 좋은 곳이 없다. 한 해가 지는 이맘때면 겨울바다는 다시 손짓한다. 쓰라린 가슴을 씻고 깨끗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도 겨울바다가 제일이다.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사진:산양일주도로에서 바라본 한려해상. 수많은 섬들과 푸른 바다, 하늘이 어우러진 그림이다.
작은 사진=일몰을 배경으로 산양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포근한 낭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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