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8일, 한줄기 섬광이 지구를 한바퀴 돌았다. 섬광은 아인슈타인이 말년을 보냈던 미국 프린스턴에서 출발, 지구를 반바퀴 돌아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의 40여개 도시를 돌아 다시 프린스턴으로 되돌아 갔다. '아인슈타인의 빛'이었다.
포항에 도착한 아인슈타인의 빛은 독도, 대전, 서울 등 한반도의 주요 도시로 빛의 행렬을 이어갔다. 이를 진두지휘한 포항공대 물리학과 김승환(46) 교수. 그는 뇌를 물리의 개념으로 풀어가는 뇌과학자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 분야는 뇌의 복잡한 구조를 물리적으로 밝혀내 뇌의 기능을 밝혀내는 학문으로 그 중심에 김교수가 서있다.
-'세계 빛의 축제'는 개인적으로 그 의미가 남달랐을 텐데…
▲1988년 9월부터 아인슈타인이 있었던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죠. 아름답고 고즈늑한 분위기를 띤 한적한 시골 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의 체취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0년전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프린스턴에서 시작된 아이슈타인 빛을 한반도에서 축제화 하게돼 물리학자로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어요.
-카오스(Chaos, 혼돈)와 뇌(腦)과학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 분야를 택하게 된 것은.
▲미국 유학 첫해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카오스와 자기조직화 현상'에 큰 흥미를 느꼈어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일리아 프리고진의 책을 읽으며 질서와 혼돈의 관계, 특히 '혼돈속에서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어요.
마침 펜실베니아 대학에 젊은 교수가 부임해와 지도교수가 됐고 박사학위 논문으로 '비선형(非線形) 동역학(動力學)과 카오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됐죠.
-'뇌 과학'은 어떤 분야인가.
▲넓은 의미의 뇌 과학은 외국에서는 흔히'신경과학'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인지과학, 뇌 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 관련된 뇌 의학이나 신경회로망의 응용을 주로하는 뇌 공학 및 감성공학 등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전반적인 것에 대한 연구를 일컫는 것이지요.
신경생물학 및 신경생리학에 기초한 좁은 의미의 뇌 과학 뿐 만 아니라 심리학 등에 바탕을 둔 뇌 과학도 그 영역에 전반을 일컫는 것으로 보면 돼요.
결과적으로 뇌는 가장 복잡한 네트워크와 동역학을 보이는 복잡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 과학'연구의 국내외 성과는.
▲의학의 발달로 우리 사회는 고령화 사회가 급진전되고 치매나 뇌졸중 같은 뇌질환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요.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뇌 연구가 필수적이에요.
또 뇌 과학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 각종 뇌질환 치료는 물론 인공 지능개발에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뇌 연구는 국내외적으로 초기 단계이고 포항공대가 1997년 설립한 '뇌 연구 센터'로 뇌 연구를 본격화 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2월 포유동물의 뇌지도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유명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에 발표해 세계 물리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지금까지 뇌 연구는 주어진 정보에 반응하는 뉴런(신경소자)들의 분포를 파악해 뇌의 기능성 지도(functional map)를 그려내는 것이 뇌의 신비를 푸는데 매우 중요한 과제로 여겨져 왔어요.특히 뇌의 뒷부분(후두엽)에 위치한 1차 시각 피질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명확해 많은 실험적, 이론적 연구가 집중되고 있는 부분이죠.
포항공대 연구팀은 원숭이, 고양이, 나무두더지 등 세 동물의 다른 뇌 시각피질지도(視覺皮質地圖)가 초 전도체나 초 유동체의 물리현상과 동일한 원리로 형성된다는 것을 밝혀내 뇌의 신비를 푸는데 한걸음 더 다가선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포항공대에 오게 된 계기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졸업을 앞 둔 1986년 고 김호길 학장의 권유로 수학자인 처와 함께 포항을 방문, 공사현장 사무실인 '롬멜하우스'에서 김 학장님을 처음 만났어요. 작업복에 구수한 언변의 김 학장님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소수정예로 세계적인 연구 중심대학을 만들자고 우리 부부를 설득했어요. "쓰레기같은 논문 그만 쓰고 귀국해서 나라를 위해 뜻을 펴보라"는 김 학장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어요. 그래서 1990년 미국에서의 직장 제의를 뿌리치고 포항공대로 부임했지요.
-포항공대 부임 후 만족하나.
▲소수정예의 우수한 학생들과 함께 카오스와 뇌 과학 연구를 할 수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특히 뇌연구 센터 창립(1997년), 아·태이론물리센터 포항공대 유치(2001년), 국제물리올림피아드 포항유치(2004년), 세계 빛 축제 포항 개최(2005년) 등은 개인적으로 큰 보람이었습니다.
-한국 물리학회 최연소 평의원으로써 우리나라 물리학의 위상은.
▲ 지난해 아.태이론물리센터를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한국에 유치한 것은 한마디로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우리나라 물리학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의 물리학자들이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으며, 세계적 석학인 러플린 박사가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 겸 포항공대 석좌교수(KAIST 총장)로 부임한 것 또한 한국물리학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 국제연구기관인 아.태이론물리센터를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 아.태이론물리센터는 10개 회원국을 가진 우리나라 첫 국제연구소입니다. 2001년 일찌감치 포항의 연구인프라와 발전잠재력을 보고 서울에서 포항공대로 옮겼는데,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면 가장 선도적 모델인 셈이죠.
아·태이론물리센터 포항 이전은 포항의 과학기술 클러스터에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포항 연구단지의 특화 및 국제화의 상징적, 구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한국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및 비젼과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올 한해 한국 과학계는 한마디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으로 국가적으로나 과학계, 국민 모두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새해에는 과학기술의 기본으로 돌아가 우직하게 과학기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갔으면 합니다. '박학독지(博學篤志, 학문을 넓게 해 덕을 쌓기 위해 뜻을 굳게 한다)'로 차세대 꿈나무인 학생들에게 새해 덕담으로 해주고 싶습니다.
-부인인 최영주(포항공대 수학과) 교수도 지난해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받았는데.
▲ 사실 아내가 나보다 더 유명합니다. 아내가 지난해 수상식 소감으로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다시 결혼, 함께 과학도의 길을 걷겠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 포항에서 태어난 두 아들 역시 스스로 잘 해주고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msnet.co.kr
◇김승환 교수 주요 약력
·부산시 구포 출생
·서울 양정고,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니아대 물리학 박사
·미국 코넬대 및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
·포항공대 정교수(이하 현재)
·포항공대 뇌연구센터 소장
·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
·한국과학재단 평가자문위원
·국가지정 비선형 및 콤플렉스 시스템 연구실(NCSL) 연구실장
·한국물리학회, 대한·미국수학회, 미국물리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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