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대사는 극존칭…朴 대통령은 반말

우리나라 전투기 월남이양 문제 협의

외교통상부가 5일 공개한 외교문서에는 문서 자체에서 군사정부 시절인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1972년 10월 28일 당시 청와대에서는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가 베트남전 휴전을 앞두고 우리나라 전투기의 월남이양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닉슨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날 공개된 대화록에 따르면 하비브 대사는 당시 박 대통령에 대해 극존칭에 가까운 경어를 사용한 반면, 박 대통령은 하비브 대사에게 철저히 반말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돌연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면접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우선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각하께 드리는 서신을 올리겠습니다"며 최대한 예우를 갖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비브 대사는 대화 내내 '각하', '각하께서'라며 박 대통령을 호칭한 것은 물론,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좋은 협조를 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라며 예의를 잃지 않았다. 그는 정작 자국의 대통령인 닉슨 대통령에 대해서는 '닉슨 대통령이', '닉슨 대통령은'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하비브 대사에게 철저히 반말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에게 대여해 달라는 말이다", "무리한 요구만을 하지는 말라" 등 때에 따라서는 하대(下待)로 들릴 수 있는 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일국의 대통령인 박 대통령과 하비브 대사의 지위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는 것으로 실제 대화가 그대로 외교 문서에 옮겨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화록을 작성한 실무자가 실제 오간 대화의 경어(敬語) 수준을 '재구성'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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