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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약전골목에 서는 청마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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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라는 시로 유명한 경남 통영 출신의 청마 유치환도 한때 대구 사람이었다. 일설에는 그가 1960년대 초에 수년간 대구여고에 교장으로 있으면서 한동안 대구약령시 서편에서 하숙을 했다고 한다.

청마는 이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도 대구약령시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고향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한약방을 하던 부친의 약 심부름으로 1947년의 가을 약령시에 참여했다. 당시 약령시는 약전골목의 대화재로 인해 달포가량이나 늦은 12월 말경에나 개시되었다.

광복 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대화재와 매서운 추위로 인해 청마가 본 당시의 약령시는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는 땅거미가 지는 시각 약령시의 배후지 도로이자 옛 영남대로였던 지금의 제탕'제환골목의 어느 주막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는 홀로 남은 이방의 외로움과 부친의 약령시 행적을 한잔 술로 더듬으며 '大邱에서'라는 다음의 시를 읊조렸다.

'동지 가까운 대구 경북의 거리는 흐리어/ 사람마다 추운 날개를 가졌었다// 일찍이 나의 아버님께선 해마다/ 고향의 앞바다 빛깔이 유난히 짙어 차겁게 빛날 때면/ 밤일수록 슬피우는 윤선을 타고/ 나의 알 수 없는 먼 먼 영(令)으로 가시고/ 가랑이 탄 바지 돌띠 띤 나는/ 수심하는 어머니 반짇고리 곁에 놀며/ 어머니와 더불어 손곱아 기다렸느니/ 젊은 아버지는 이렇게// 이 곳 낯설은 거리에 내려 추운 날개를 하고/ 장끼를 들고 당재(唐材) 초재(草材)를 뜨셨던구나// 내 오늘 장사치모양 여기에 와서/ 먼 팔공산맥(八公山脈)이 추녀 끝에 다다른 저잣가 술집 가겟방에 앉아/ 요원한 인생의 윤회를 적막히 느끼었노라.'

육로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이라, 청마의 부친은 여객선으로 부산까지 가서 기차를 이용해 해마다 약령시에 참여했으리라 생각된다. '영'(令)은 대구약령시를 의미하며, '장끼'는 약재를 구입한 계산서이다. '당재'와 '초재'는 각각 수입 한약재와 국산 한약재를 나타낸다.

약령시보존위원회와 중구청의 노력으로 대구약령시를 노래한 청마의 이 시가 약령공원 내에 머잖아 시비 건립을 통해 소개될 것 같다. 그래서 대구약령시가 청마의 시를 통해 다시 한번 더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구약령시가 개설된 350주년의 해인 내년 봄쯤에는 약전골목에서 청마의 시를 찬찬히 재음미해보고 싶다.

박경용(영남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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