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진량봉회교회 출애굽 사건'증인 이종호 선생

"아픔 되풀이 않으려면 역사 잊지 말아야지"

27일 오후 대구 수성구 시지동의 한 아파트. 이종호(84) 선생은 동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대구시가 주최하는 3·1 절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내용의 초청장을 받는다.

"1996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은 이후 벌써 10년째 날아드는데 올해는 조금 늦게 도착했네요." 이 선생은 잠시 눈을 감고 60여 년 전 그날의 기억을 되새긴다.일본제국주의의 광기가 극단으로 치닫던 1943년 6월. 경산시 진량면 봉회교회의 한 장로가 남긴 쪽지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일본이 패망하고 멀지 않아 조선이 독립한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

항일집회에 참여했던 청·장년 14명이 즉시 일경에 체포됐다. '치안유지법 위반'.평소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았던 그도 독립운동에 연루된 혐의로 일경에 붙잡혔다. 이른바 '진량봉회교회 출애굽 사건'. 혹독한 고문이 뒤따랐다. 쇠심줄로 등허리를 맞으면 살이 묻어 나왔다. 비명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놓길 여러번.

지옥 같던 유치장에 갇힌 채 3개월이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구더기가 코 안에서도 나오고 입 주변을 기어다녔죠. 방안에는 온통 모기와 빈대로 들끓었어요. 끔찍했던 기억이에요." 이 선생은 지금도 몸서리를 친다.

이 선생이 지금까지 미안하고 안쓰러운 건 6년 전 떠나보낸 부인이었다. "갓 태어난 큰아들을 업고 보리미숫가루를 머리에 인 채 30리 밤길을 걸어 유치장으로 왔어요. 아내가 간수 몰래 쪽문으로 넣어준 미숫가루를 변기통 안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먹으며 연명했죠. 생각만 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짠해집니다. "

1년 6개월 후 풀려났지만 고문의 후유증은 이 선생을 놓아 주지 않았다. 평생을 병마와 싸워온 것. 지금까지 마음껏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물고문 때문인지 그는 조금만 음식을 먹어도 토하기 일쑤였다.

그후 50년의 세월이 흐를 동안 이 선생은 독립 유공자로 선정조차 되지 못했다. 아니, 되지 않았다. "국가가 먼저 나서서 독립유공자를 찾아야지요. 스스로 '내가 독립 운동했으니 훈장 주시오'하는 우스운 꼴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선생은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해 역사 과목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을 통탄했다. "죄를 용서하더라도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습니다. 역사 의식이 없으면 결국 비참했던 과거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혹독한 고초를 당한 이종호(84) 선생은 역사 의식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한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