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살아 온 게 인류의 역사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부자 나라들이 있지만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그 정도가 문제다. 두 계층 간의 간극이 자꾸만 벌어지고,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번역'출간된 로버트 A 아이작 교수(미국 뉴욕페이스대)의 '세계화의 두 얼굴'은 이 문제를 다뤄 관심을 모은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으로 승자 독식 체제가 구축되고, 패자 보호 장치는 위축돼 세계화에 성공한 나라들마저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가 하면, 중산층이 하류층에 포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정보화 물결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거대 기업을 운영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부(富)를 확대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점점 빨라지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일의 활력을 계속 못 높이면 도태되는 '속도의 덫'에 걸렸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약점과 제도'교육'문화'정보화의 취약성 탓으로 '빈곤의 덫'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됐다는 진단이다.
아이작 교수는 그러나 반(反)세계화보다 '인간적인 얼굴을 한 세계화'와 '지속 가능한 세계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계속 높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그 길은 부자 스스로가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를 구축하는 데 있으며, 특히 저소득 자녀에게 교육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들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의 뜨거운 사회적 화두(話頭)도 바로 이 '양극화' 현상이다. 얼마 전,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우리가 놓인 상황을 "경제는 어렵고, 민생은 고달프며, 사회는 어지럽고, 외교는 불안하다"고 했다. "이 정권의 반시장, 반기업, 반서민정책 때문에 경제가 성장을 못해 중산층과 서민이 빈곤층으로 내몰리면서 최악의 양극화가 생겼다"고도 했다. 처참하고 아프지만 '숨길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이제 4년차에 접어든 참여정부는 여러 여론조사나 국정 평가에서 '참담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과거사 파헤치기와 편 가르기'용 국정 과제에 매달리다가 뒤늦게 '양극화'를 들고 나오면서도 '최악'은 아니라고 우긴다. 게다가 여전히 정치적 어젠다를 쏟아내고, 선거와 집권을 겨냥한 정치적 제스처에만 급급한 인상이다.
대통령이 그런 카드를 꺼내자 여당 의장이 한술 더 뜨는 모습도 곱게 보일 리 없다. 어디 그뿐인가. 현직 장관들을 상당수 징발해 5'31 지방선거에 내보내려 하니 '이 정권은 도대체 경제도 민생도 뒷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장관 자리마저 '얼굴 알리기와 지명도 높이기'용이요, '선거용 잠깐 자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전히, 아니 어쩌면 더욱 심하게, 두 극단으로 갈라지고 있다. 더구나 여전히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는 느낌이다. 영남과 호남,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젊은 층과 나이든 층, 사용자와 근로자 등 어느 모로 봐도 성한 데가 없게 된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
이런 정치적 정황에 비춰, 백성을 끔찍이 사랑했던 옛 중국 태수 왕존(王尊)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홍수가 나서 동네 제방이 위태롭게 됐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도피했다. 관리들마저 도망치고 서기 한 사람만 울고 있는 가운데 왕존은 제방에서 신에게 지성으로 제사를 지냈다. 물이 계속 불어 둑이 터지기 시작했지만 '제 몸으로 대신 제방이 되겠으니 비를 멎게 해 달라'고 빌었다. 한참 뒤 비가 멎고 하늘이 개어 제방은 더 이상 허물어지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 이후 하늘이 왕존의 희생정신에 감동한 결과라고 믿었으며, 오랫동안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나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그런 정치지도자가 아쉽다. '잿밥 눈독 들이기'와 공허한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정부'여당을 보고 싶다.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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