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실존인물들이 스크린 속에서 부활한다. 무인 곽원갑, 카사노바, 자니 캐시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의 삶을 다룬 외화가 대거 개봉해, 영화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계에도 '역도산', '한길수', '청연', '그때 그 사람들' 등 다양한 실화영화가 선보였으나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사실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된 정치적 문제와 친일 여부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었던 우리 실사영화와는 달리 이달 개봉하는 외화는 관객들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
이연걸의 마지막 영화로 더욱 주목받고 있는 '무인 곽원갑'은 실제 인물인 곽원갑의 삶을 극화해 주목을 받고 있다.
무도 정무문(精武門)을 창시한 곽원갑(1868~1910)은 1900년대 초 밀려드는 외세에 맞설 힘조차 없이 급속히 붕괴됐던 중국에서 중국의 자존심을 지켜준 인물로, 지금까지도 중국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23일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한 무술인의 영웅담 보다는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어, 관객들에게 거부감없이 다가간다. 원갑의 아버지는 유명한 무술인이지만 아들에게는 무술을 시키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는 뛰어난 무술로 지역 내 무술인들의 도전을 받지만 늘 마지막 일격을 아끼는 바람에 대련에서 지는 경우가 많다. 어린 원갑은 이런 아버지가 불만이지만 그의 곁엔 지혜로운 어머니와 늘 함께 해주는 친구 경손이 있어 부족함이 없다.
세월이 흘러 원갑은 아버지의 가업을 잇게 되고 여러 무인의 도전을 받아들이며 승승장구한다. 그런 와중에 라이벌인 진사부와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고 승리하는데, 진사부는 결투 후 숨지고 만다. 진사부의 수제자는 복수심에 불타 원갑의 어머니와 딸을 살해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곁에서 늘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친구 경손은 승리 자체에만 집착해 가는 원갑과 절교를 선언한다. 더욱이 진사부에 대한 오해가 제자들의 거짓말 때문이었다는 데 충격을 받은 원갑은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때 그는 앞을 못보는 착한 여인 월자에게 구조된 후 고즈넉한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깨달음을 얻는다.
아버지가 왜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않았는지 알게 된 그는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외세로부터 제기된 4대1 결투를 승낙하고 최고 경지에 이른 무술을 펼친다.
영화는 곽원갑의 무술 훈련이 아니라 정신 수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신 수양도 농촌에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얻는 방식이다. 농촌생활과 모심기 장면은 경쟁보다는 협력, 정복보다는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다.
무술 장면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연걸은 마지막 액션영화에서 현란하면서도 우아한 액션연기를 선보인다. 한편 이 영화는 영화화한 곽원갑 삶의 허구와 진실의 민감한 부분들 때문에 유족들에게 항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성(性)과 사랑을 추구했던 인물의 대명사 '카사노바' 역시 오는 10일 스크린에서 영화로 부활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영화는 역대 카사노바 영화와는 다르게 카사노바를 단순한 호색한을 넘어선 풍부한 지성과 날카로운 유머를 지닌 21세기형 인간으로 그려냈다.
17살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외교관·군인·작가·철학자 등으로 활동할 만큼 유능한 인물이었던 카사노바를 영화는 지적인 면과 그의 애정행각을 병치시켜 새로운 인물로 구현하고 있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카사노바(히스 레저)와 여성 작가 프란체스카 브루니(시에나 밀러)의 사랑 이야기.
바람둥이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카사노바는 약혼을 하는데, 뜻하지 않게 자신의 약혼녀를 흠모하던 한 청년으로부터 결투 신청을 받게 된다. 카사노바는 어쩔 수 없이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가면을 쓰고 나온 인물은 청년이 아닌 그의 누나 프란체스카.
프란체스카는 강한 의지와 뛰어난 지성을 가진 페미니스트 작가로, 신랄한 위트와 영리함, 고전적인 미모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 글로 유명하다. 카사노바는 프란체스카가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고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온갖 속임수와 허풍, 위선 행각을 벌인다. 사랑을 쫓는 카사노바의 가벼움과 카사노바의 가벼움을 거부하는 프란체스카의 무거움이 대비된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이 영화는 음악과 의상, 화려한 미술로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제니 비번은 1700년대 베네치아 상류사회의 화려한 의상을 불타는 듯한 붉은색, 호박빛 노란색, 터키 블루 등으로 부활시키고 있다.
주인공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카사노바 역을 맡은 헤스 레저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 에니스역도 맡아, 남자를 사랑하는 슬픈 사랑의 주인공과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컨트리뮤지션 자니 캐시(Johnny Cash, 1932~2003)는 영화 '앙코르'에서 부활, 중년의 관객들에게 젊은 날의 향수를 자극한다.9일 개봉하는 '앙코르'는 올해 아카데미도 주목했던 작품으로, 여주인공을 맡은 리즈 위더스푼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0세가 되기도 전에 비틀즈의 인기를 앞섰고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 리 루이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니 캐시의 삶을 다룬 '앙코르'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열정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춰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내고 있다.
자니 캐시(호아킨 피닉스)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형이 어린 시절 사고로 죽은 뒤 형을 대신해 부모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평생을 힘들어하며 노력한다. 그의 곁엔 어릴 때부터 음악이 늘 함께 했다.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작은 레코드 회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앨범을 낸 뒤 순식간에 전미국 소녀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스타가 된다.
유부남이었던 자니는 가수인 준 카터(리즈 위더스푼)와 투어를 다니다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고 온갖 약물중독으로 망가진 그에게 준은 유일한 희망이 된다. 영화 '앙코르'는 자니 캐시의 음악세계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자니 캐시를 그리워하는 음악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 같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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