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왜, '개구리 소년들'을 살해했을까.
범인들은 15년간 오리무중이지만 경찰은 오는 25일 공소시효 만료에 상관없이 '수사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범인과 범행 동기, 그리고 범행 과정을 밝혀내는 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여지껏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걷는 사이 일부에서는 '타살'이 아니라 '저체온사'라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실정.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는 2006년 3월, 공소시효 만료와 함께 끝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가?.
◆'소년들은 살해됐다'
2002년 11월 12일 경북대의대 한 강의실에서 열린 '개구리소년 신원 확인 및 법의학적 감정 중간 보고회'. 감정을 맡은 법의학팀은 "개구리 소년들은 실종 당일 유골 발견 현장에서 살해된 뒤 암매장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후 소년들의 유골들을 공개했다.
참혹했다. 소년들의 두개골에서는 10~20여 개의 골절흔이 나타났다. 법의학팀은 둔기와 날카로운 흉기에 맞아 생긴 손상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경악했다. 유족들은 소년들의 고통을 떠올리며 통곡했다.
범인은 정신 이상자며 최소 2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됐다. 다섯 명이나 되는 어린이들을 혼자서 해치기는 어렵다는 것.
지질학 전문가도 인위적으로 매장됐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산악구조 전문가는 유골 발견 장소가 피난할 만한 곳은 아니라는 의견을 내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유족들과 경찰 관계자들을 가장 당혹게 만든 건 범행도구. 사다리꼴 모양의 날카로운 상처를 내면서도 둔중한 흉기. 경찰은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법의학팀은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소년들의 두개골 손상 부분 사진을 공개, 전 국민들에게 범행도구 제보를 당부했고,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범행도구 단서를 의뢰했지만 3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범행도구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저체온사(?)'
개구리소년 수사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타살이 아니다'는 주장까지 속출했다. 개구리 소년 실종 직후 1년 가까이 수사를 총지휘했던 전 경찰 간부는 유골 발견 이후 소년들의 사인을 '타살'로 결론내린 경북대 법의학팀 감정 결과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이 간부는 개구리소년들의 죽음이 '저체온사'라고 주장했다. 소년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숨진 뒤 자연 풍화작용에 의해 굴러내린 돌들이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 '범행도구'라는 것.
하지만 저체온사는 경찰 스스로가 '잘못 짚었다'고 시인한 사인이다. 경찰은 유골 발견 최초 시점에서 저체온사로 규정지었지만 유족들은 물론 법의학, 지질, 산악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타살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지난해 유족들은 경찰이 "저체온사로 잘못 판단해 초동수사를 소홀히 한 탓에 유골들이 훼손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까지 냈고 현재 재판에 계류중이다.
◆수사 답보
타살로 결론이 났지만 수사는 오리무중. 사망 추정일로부터 11년 6개월이 흐른 뒤에야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범인에 대한 제보는 300건이 훨씬 넘었지만 모두 엉터리였다.
1개서 규모를 넘나드는 경찰 인력들이 한꺼번에 투입됐던 초기와 달리 현재 개구리 소년 경찰 수사 인력은 형사과 1개팀이 전부.
경찰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 갑자기 수사가 진전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전·현직 개구리소년 수사 관계자들은 "경찰에서 개구리 소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만약 범인이 있다면 범인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개구리소년 일지
△1991년 3월 26일=김종식(당시 9·성서초교3년), 박찬인(당시 10·〃), 김영규(당시 11·〃4년), 조호연(당시 12·〃5년), 우철원(당시 13·〃6년) 군 등 같은 동네 어린이 5명이 지방선거로 임시공휴일인 이날 개구리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 실종.
△ 〃 4월 1일=경찰 수사가 부진하자 가족들이 현상금 200만 원을 내걸고 목격자 확보 본격 착수.
△ 〃 4월 17일=경찰 실종수사가 답보상태를 보이자 경찰청(당시 치안본부)이 직접 나서 대구·경북·부산·경남 경찰청(당시 경찰국)과 공조체제로 전면 재수사.
△ 〃 9월 14일=전국 1만2천여 명의 집배원 오토바이 적재함에 '대구 어린이 찾아줍시다' 포스터 부착하고 어린이 찾기 동참.
△ 〃 11월=개구리소년 소재로 한 음반 출반.
△ 〃 11월=실종사건을 영화화 한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 개봉.
△ 〃 11월=경찰 전국 경찰서에 수사전담반 편성.
△1995년 7월=경찰, 명지대 도움받아 개구리소년 5명의 변모된 얼굴 모습을 그래픽으로 재생시킨 전단 2만여 장 전국에 배포.
△ 〃 10월 22일=김종식 군 아버지 김철규(당시 49세) 씨 경북대 병원에서 간경화로 사망.
△2002년 9월 26일=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4부 능선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에서 실종 어린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과 의류, 신발 발견.
△2002년 11월 12일=경북대의대 법의학팀 개구리소년 사인 '타살' 결론.
△2003년 2월 14일=개구리소년 성서초교에서 명예졸업식.
△2004년 3월 26일=경북대병원 영안실에서 개구리소년 합동영결식.
△2005년 8월=유족들 국가상대 손해배상 소송.
△2005년 3월 25일=공소시효(15년) 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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