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관용의 전제조건

알레르기(Allergy)라는 말은 1906년 클레망스 폰 피르케(Clemens Von Pirquet)가 만들었다. 그리스 말 'Allos(변화하다)'와 'Erogon(힘)'의 합성어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T. S. 엘리어트 시의 한 구절처럼 알레르기성 비염은 봄을 잔인한 달로각인시키기 충분하다. 콧물이 수도꼭지의 물줄기처럼 콸콸 흐르고 재채기가 나며 가렵기까지 한 증상은 자살충동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의 위험 수위라 할 수 있다. 침 맞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조차 "엄마 코가 시원해요. 치료하러 가요." 라는 말을 들었다는 보호자들의 칭찬은 차라리 눈물겹다. 같은 알레르기성 질환인 아토피성 피부염은 더욱 괴롭고 안타까운 질환이다. 긁고 또 긁어 진물로 덮여진 아이들의 모습도 애처롭지만, 이차 감염이 될까봐 손에 장갑을 끼우고 밤새 아이 곁을 지켜야 하는 부모의 충혈된 눈은 의사로서의 자괴감마저 사치스럽게 한다. 지난해 국회 환경 노동위에서 아토피의 고통을 증언 했던 김자경 씨의 가족이 환경이 좋은 캐나다로 이민 간다는 사실은 생생하게 그 피부염이 일으키는 고통을 증언한다.

인체는 외부 이물질에 대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콧물이 쏟아지는 것은 침입한 바이러스와 세균을 분해하고 씻어내기 위한 물청소이고 재채기는 시속 180km의 속도로 이물질을 날려 보내기 위한 인체가 만든 폭풍이다. 가려움은 이물질을 긁어서 빨리 제거하기 위해 피부가 보내는 신호이다. 자기 방어를 위한 강력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배후에는 우리 인체를 지키는 면역반응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면역은 인체의 국방부에 해당한다. 혹 정신세계가 면역을 지배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뇌사' 상태에서도 면역이 활동하면서 생명이 유지된다. 면역은 정신세계보다 더 앞서는 존재의 본질인 셈이다.

알레르기 질환에 있어서 꽃가루, 진드기, 동물의 털, 비듬, 진균류, 직물의 먼지가 원인물질로 자주 지목된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들은 자연계에서 늘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나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관용의 부족이다. 왜 이런 물질들과 나는 공존 할 수 없고, 관용하지 않는가의 열쇠는 바로 T 세포가 가지고 있다. T 세포는 '나는 나'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구성된 면역기능의 중심물질이다. 관용 할 것인가 아니면 알레르기와 같은 전쟁을 할 것인가의 핵심은 정체성이 쥐고 있다.

북한과의 화해가 현실화되면서 사상과 체제에 대한 관용이 폭넓게 물꼬를 텄다. 소설 「태백산맥」을 비롯한 우리 역사 되돌아보기부터 시작된 화해와 공존의 정신은 북한과 해방 전후사에 대한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냥 노무현이라 불러도 김정일은 김정일 국방주석이라 부르지 않으면 머리 뒤가 쭈뼛하다는 시사성을 띤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일성을 숭배하고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지식인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수사 지휘권까지 발동하고, 국가보안법 사수를 외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반정부시위 단체로 몰아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것은 관용의 꽃을 얻기 위해 정체성이라는 뿌리를 흔드는 것과 같다.

관용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정체성이다. 자기를 바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면역에 있어서 정체성의 확립은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자기와 너무 강하게 반응하는 세포들은 96 - 97% 가 파괴당한다. 100명 중에서 3명이 살아남는 처절한 생존이다. 이와 같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가면서 확립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북한은 한민족이요, 서로가 껴안아야 할 형제이다. 6.25의 전쟁 비극과 아픔을 겪으면서 형성된 증오가 관용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대세다. 증오가 증오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예수님이나 석가모니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동의하는 보편적 진리이다. 그러나 정체성을 허물면서 관용하는 것은 혼란과 반란의 시작을 예고한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라는 점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체성을 흔들면서 관용하는 것은 결국 알레르기 질환과 같은 질병을 불러일으킨다. 끊임없이 긁고 재채기하며 가려워하는 지독한 공포가 될 수 있다.

이상곤 대구한방병원 안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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