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뇌출혈 할아버지 돌보는 3명의 손자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 김동진(가명·71·서구 비산동) 할아버지는 평생 그 같은 침대에 누워볼 일이 없었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긴 하지만 마음은 편치 못할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애지중지 키웠던 손자 셋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용훈(가명·17·고1)이는 이따금 두 동생 소현(가명·13·여·중1)이와 용현(가명·12·초교 6년)이를 데리고 할아버지의 병상을 찾는다. 용현이가 "할아버지, 우리 왔어요."라고 부르면 할아버진 희미한 미소로 대답한다.

지난 달 중순 뇌출혈로 쓰러진 할아버지는 말귀는 알아듣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몸도 말을 듣지 않아 팔만 약간 움직일 수 있을 뿐. 며칠 전 무료 간병인이 붙기 전까지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은 용훈이의 몫이었다.

"할아버지가 우릴 키우느라고 힘드셨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시며 폐지, 폐품을 주워 판 돈으로 우릴 돌보셨습니다. 할아버지가 한 고생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 거 아니에요."

용훈이 어머니는 막내 용현이가 태어나자마자 집을 나갔다. 용훈이 남매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 맏이 용훈이가 기억하는 어머니도 술취한 아버지에게 맞는 모습이 전부일 정도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에도 용훈이 아버지의 술주정은 끊이지 않았고 말리는 할아버지와 다투기 일쑤였다. 남매는 그런 아버지가 무섭고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훈이 아버지는 사라져버렸다. 이미 10여 년 전 일이다.

"아직 어머니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동생들이 어머니를 찾지 않는 것은 다 할아버지 덕분이에요. 우릴 입히고 먹이느라 혼자서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열심히만 살면 길은 있다고 하시면서요."

용훈이 아버지가 사라진 뒤 월 20여만 원짜리 초라한 월세방엔 할아버지와 세 남매만 남았다. 남매가 하나 둘 학교에 들어가고선 할아버지가 도맡던 집안일도 나눠 맡았다. 당번을 정해 번갈아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제일 맘이 편했어요. 가난했지만 할아버지도 건강하셨고 동생들도 학교생활이 재미있다고 했고요. 어려운 집안 형편 탓도 하지 않고 잘 지냈습니다. 막내가 장난꾸러기라 가끔 속을 썩이긴 했지만 그 나이 땐 다 그렇잖아요."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면서 평온했던 일상도 깨어졌다. 지난 해 6월 갑자기 전화 연락을 한 번 하더니 한달 뒤 집으로 들어온 것. 멸치잡이 배를 타는 등 떠돌아 다녔다는 아버지는 빈털터리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변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매일 술병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했다. 고함을 지르고 살림을 부수는 등 술주정을 일삼았다. 말려봐야 주먹이 날아올 뿐. 그 바람에 남매는 눈도 제대로 못 붙이고 학교에 가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아버지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남매는 짐을 쌌다. 아버지를 피해 여관을 전전하길 일주일. 지난 8일 결식아동을 위한 무료급식·방과 후 학습지도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한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손톱을 물어뜯는 소현이의 버릇도 불안감이 큰 데다 부모의 사랑이 그립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래요. 아버지 때문에 겁에 질려 있는 동생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지금까지 밀린 할아버지의 병원비만 이미 수백만 원. 일찍 철이 든 용훈이도 아직 사춘기 소년일 뿐이어서 해결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용훈이 머리엔 지금 할아버지 생각뿐이다.

"할아버지가 다시 일어나신다 해도 혼자 움직이시긴 힘들답니다. 함께 살고 싶지만 병원에선 요양원에 가셔야 할 것 같대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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