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슬픈 수컷

슬픈 수컷

어릴 적 마당에서 신나게 놀다가 맞부딪쳐 겁에 질리는 대상이 사마귀였다. 긴 다리와 희한하게 생긴 눈, 앞다리도 무서웠지만 사마귀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배설물에 눈이 닿으면 봉사가 된다는 공포감에 쌓여 벌벌 떨 따름이었다. 알고 보니 지금도 우리에게 사마귀의 인식은 나쁜 고사들로 점철되어 있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이라는 말은 사마귀가 자기 힘도 모르면서 턱없이 수레바퀴를 막고 선다는 말이고, '버마재비 같은 X' 은 자기 남편을 잡아먹는 무서운 여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사마귀의 행동양식은 그런 측면이 있다. 교미를 할 때 암컷 사마귀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수컷 사마귀를 덥석 물어버린다. 다리나 몸통이 아니라 대부분 머리를 먼저 물어뜯는다. 수컷 사마귀는 머리를 물어뜯기든 말든 교미를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뇌가 없어졌기 때문에 순수하게 2세 번식만을 위한 교미만 계속한다. 교미가 끝나면 수컷은 암컷과 알의 영양분이 되어 자기 2세를 위한 활력소로 밀알역할을 하게 된다. 슬픈 운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셈이다.

이런 2세를 위한 수컷의 집착은 홍관조(Cardinal)도 마찬가지다. 암컷은 구애하는 수컷을 쪼아 일단 쫓아버린다.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 피가 나도록 쪼고 난 뒤에야 비로소 교미를 허락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사슴이나 양의 수컷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힘자랑을 하고, 수캐구리가 숨을 크게 들어 마셔 턱 밑의 주머니를 부풀리는 과장 또한 2세를 위한 수컷의 전략에 다름 아니다.

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름없는 인간 세계의 수컷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뉴요커들이 결혼하지 않고 정자은행의 훌륭한 정자로 임신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최근의 외신은 우리를 때로 슬픈 상념에 젖게 한다.

자연의 섭리 상 암컷이 바라는 것은 안정된 먹이를 통한 자기 유전자의 보존이지, 수컷의 뒤치다꺼리는 아니다. 이 때문에 경제력이 확보된 그들이 수컷을 위해 생활을 희생할 이유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람의 경우, 자기 번식을 위해 목숨을 건 사마귀나 고통을 수반하는 구관조의 노력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정자은행에 보관되는 선택의 행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남성의 성적능력을 의심하게 하는 조루 질병도 마찬가지다. 본래 수컷은 야생에 놓여졌을 때 교미를 오래 끌면 다른 경쟁자에게 밀리게 되고 번식 확률이 낮아지므로 교미를 빨리 끝내야 번식 성공도가 높아진다. 교미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이 합리적으로 볼 때 오히려 문제가 됨에도 불구하고 교미 시간을 상대방이 만족할 때까지로 맞추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다. 의학적으로 볼 때 1분 정도가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건강상 멀쩡한 남성까지 시간 끌기 약물을 권하는 시대로 변해가 버렸다. 여성의 상위 시대는 코앞까지 닥쳤다. 남녀공학에서는 여학생들의 학습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아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 특히 일반직 공무원, 교육 공무원 일선에는 거의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어, 남성들은 일자리가 없고 경제력이 없어 결혼조차 늦어진다.

전통적 우리 가정에서는 큰 돈은 남편이 관리하고 잡다한 작은 생활비는 집안에서 용처에 맞게 아내가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1세기 오늘의 핵가족 시대에 와서는 재테크가 아파트 등의 부동산으로 바뀌다 보니 인테리어나 학군 등에 무감각한 남편들은 결정 과정에서는 소외되고 기껏 자금 조달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세계적인 추세여서 세계적인 경제 잡지에서 조차 '우머노믹스(women+economics)' 로까지 정의할 정도가 되었다.

정자은행에 밀려 거세당하고, 의학적 기준에 따라 능력 없는 남자로 낙인찍히고, 시험에서 밀려 직장을 잃고, 경제적 감각이 떨어져 슬픈 수컷이 되어가는 것이 우리시대의 조류인 셈이다.

이상곤 대구한방병원 안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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