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영근 作 '나무들'

나무들

김영근

저 나무는 저기서 길 잃었구나

날은 저무는데

걸어온 길도

가야할 길도 지워져

사막에서 신기루를 가지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넌 한 번이라도

신기루를 진실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니

맛을 잃어버린 것은 네 삶의 돌이킬 수 없는 불행

스스로 매혹이 되지 못한 감식가들이란

또 얼마나 쓸쓸할까

눈부시게 열리는 한 순간인지

가지 출렁인다

이파리 몇 툭, 떨어진다 바람 때문인지

두어 번 구르다 이내 잠잠하다

오늘은 햇살, 무슨 맛으로 길 불러

저토록 가볍게 사라질까

'길'을 따라 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굳어진 그대여, 사막에 서 보라. 사막에는 '길'이 없다. '길'만을 믿는다면 그대여, 어디로도 나갈 수가 없다. 사막에서는 '신기루'를 믿지 않으면 한 곳에 붙박이로 서는 '나무'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현실이 사막이라면 그대여, 신기루에 매혹되어야 하리. 그리고 그곳을 향해 가볍게 걸어가야 하리. 비록 가 닿을 수 없을지라도. 그대는 '나무'가 아니라 '꿈꾸는 인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대여, 새로운 눈으로 보라. '햇살'은 '길' 없는 허공으로도 가볍게 사라지지 않는가.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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