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1번지 진달래 아파트 101동 1001호
철이네 식구가 새로 이사한 48평형 보금자리입니다.
베란다 창문을 열면 성큼 다가서는 산기슭에서 소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산벚나무, 싸리나무…들이 맨발로 떼 지어 건너와 거실에다 수런수런 솔솔솔 쏴아아…비빗쫑 노알노알 짝짜그르… 온갖 바람소리 새 소리를 쏟아내고, 하늘의 해와 달도 따라 들어와 뒹굴며 놀다 가는, 그림 같은 집입니다.
맞벌이하시는 철이 부모님은 요즘 매일같이 일찍 들어와 집안을 꾸미느라 골몰이십니다. 다정하게 의논하여 새로 산 가구의 자리를 정하고, 예쁜 그림을 벽에 걸고, 아끼는 도자기를 진열하고, 옷가지와 그릇들을 챙겨 넣느라 밤늦은 줄 모르다가 어느 때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철이네 식구들이 대문을 잠그고 집을 나가자마자 집안 구석구석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개미들이 거실 바닥에 모두 모여 난데없이 데모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10시 10분 경, 철이 어머니가 주방 바닥을 쓸면서 싱크대 밑으로 먹이를 찾아 이동하던 개미떼를 모두 쓸어 담아 창 밖으로 던져버린 일을 규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이 아버지가 '어떻게 마련한 집인데 요 쪼그만 것들이 들어와 사느냐'면서 최류탄 연기처럼 독한 약을 집안 구석구석에 뿌린 일이며, 철이까지 나서서 '개미 출입 엄금'이라고 쓴 색종이를 주방 벽에 붙인 사실에 몹시 분개하고 있습니다.
철이네 식구는 반성하라! 사과하라!
24시간 집을 지키는 우리가 주인이다!
개미들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이 산비탈에 조상 대대로 살아왔으며, 아파트 공사가 끝나자마자 먼저 들어와 살고 있는 자기네가 진짜 주인인데, 철이네 식구들이 자기네 집이라고 우기니 정말 기가 꽉꽉 막히며, 또 어제 저녁에 10층 아래로 던져진 식구들의 생존을 확인할 수도 없고, 살아있다 하더라도 이제 영영 만날 수 없으니, 이는 주택소유에관한우주질서파괴죄에다 생이별조작에의한가족파탄죄에 해당하니 법원에 고소를 하든지 아니면 아예 하늘의 상제님께 특별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야단들입니다.
처음부터 이들을 지켜보던 해님이 노란 손수건을 펴 개미들의 눈물 콧물을 닦아주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보다 더 억울한 일도 수없이 많다면서 철이네 식구들이 오기 전에 빨리 해산하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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