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화사 포교국장 선용스님과 차밭골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한 노스님이 절집의 공양간 하수구 앞에 구부리고 앉아 바늘로 밥알과 나물찌꺼기를 콕콕 찍어 그릇에 담고 있었습니다. 한 톨도 남김없이 음식 찌꺼기를 주워 담은 스님은 맑은 물에 그것들을 씻은 다음 당신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를 본 젊은 공양주(밥 담당), 갱두(국 담당), 채공(반찬 담당)스님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곡식 한 알이라도 어디서, 어떻게 왔으며 과연 내가 먹을 자격이 있는가를 늘 살펴야 하거늘 함부로 버리고 흘리면 장차 이 죄를 어찌 다 갚을 것인가"

구산(九山)스님의 이런 철저한 수행은 승보사찰 송광사의 엄격한 가풍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속세에서는 아까운 먹을거리가 많이 낭비되는 실정입니다. 이에 동화사 포교국장인 선용(禪龍)스님(법랍 19년)에게 절집의 음식문화를 들어봅니다.

절에서 밥을 먹는 일, 이른 바 발우공양은 수행의 연장선상에 있다. 소심경 중 식당작법 편에 보면 스님들의 식사과정은 모두 12번의 의식 속에 치러진다. 곡식 한 알 한 알에 대한 감사의 게송이 주된 내용이다.

"요즘은 식사계율이 많이 간소화되고 있지만 정신은 오관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죠."

오관계란 △이 음식은 어디서 왔으며 △나의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러우니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삼아 △진리를 깨닫고자 먹는다는 마음가짐.

"로마가 망한 이유 중 하나도 먹는 일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죠. 참된 미식가는 감각적인 맛을 좇는 게 아니라 소찬일지언정 고마운 마음으로 먹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고마우면 음식 찌꺼기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맛도 자연스레 따라 옵니다"

발우공양 마지막에 스님들이 먹은 그릇을 물로 씻어 마시는 절수게 역시 육도중생 중 가장 배고픈 자들인 아귀를 위한 의식이다. 아귀들은 수행자가 음식을 먹었던 발우 씻은 물만 먹을 수 있으므로 작은 식사소리에도 발광을 한다. 때문에 골고루 음식을 먹이기 위해 되도록 정숙하게 식사를 해야 한다.

"수행자가 가장 경계할 점이 탐(貪'탐욕), 진(瞋'화냄), 치(痴'어리석음) 삼독입니다. 깨달음의 진리를 얻기 위한 계(戒), 정(定), 혜(慧) 삼학의 반대개념이죠. 육식과 오신채를 절집에서 금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고기는 힘을 기르지만 성격을 포악하게 하며 자극적인 오신채는 탐심을 불러옵니다."

본래 불가에서는 지금처럼 금하는 음식에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조선조 선승 진묵대사 또한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사하촌에서 안주와 술을 먹고 절에 오르다 벼랑에서 굴렀는데 보호신장이 조금 늦게 나타났다. 왜 늦었냐고 따지자 "대사의 몸에서 나는 독한 냄새 탓에 가까이 있질 못해서 늦었다"는 말에 대사는 그 날로 육식과 오신채를 끊었다. 이처럼 사찰 음식문화 형성은 모두 수행의, 수행을 위한, 수행에 의한 일로 수렴되고 있다.

그렇다고 절집이 일년 내내 엄격한 수행공양만 있는 것은 아니다.보통 한달에 2,3번 있는 삭발 때엔 찰밥과 미역국으로 보신을 하기도 한다. 삭발은 기운을 많이 빠지게 하므로 원기회복차원에서 수행도 잠시 놓고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개인적인 기호식품도 즐긴다. "더운 여름철이면 제 경우 다시마로 낸 맑은 장국에 수제비를 떠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을 풀어 땀을 흘리며 얼큰하게 먹고 나면 기운을 되찾아요."

콩국수도 여름별미 중 하나. 콩을 불리지 않고 바로 삶아 콩물을 내면 콩의 단맛도 그대로 살아있게 된다. 절집의 음식 노하우인 셈이다. 특히 은근한 불에 무, 다시마, 매운 풋고추 서너 개를 넣고 오랫동안 우려내면 국을 끓일 때 양념장이 될 뿐 아니라 더욱 졸이면 어느 반찬과도 잘 어울리는 천연 조미료가 된다.

"공양간에서 특별히 맛있는 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공양주 스님은 밥을 더 짓습니다. 수행하는 스님들도 입맛을 되찾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대중이 모여 사는 공동생활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고향 차밭골

정담정론 코너의 취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선용스님이 추천한 식당이 동구 중대동 파계사 밑 시설지구에 있는 '고향 차밭골'이다.

한식 한 가지만 제공하는 이 집은 평범하면서도 토속적인 음식이 특징. 밥과 10여 가지의 찬으로 구성된 메뉴는 고향의 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추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맛을 본 선용스님은 몇몇 반찬이 조금 짜다고 평했으나 그럼에도 다른 반찬들은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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