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할 때이건, 공부를 할 때이건, 여가를 즐길 때이건, 사랑을 할 때이건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분출되는 근거는 '설렘'이다. 심장의 두근거림이다. 정삼각형이 아니라 역삼각형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한 점으로 수백 배의 크기를 지탱하고 있으므로 언제 어느 방향으로 쓰러질지 모른다. 안정성은 제로요 역동성은 100이다. 초행길은 항상 더 길고 멀게 느껴진다. 처음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며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는 속도는 느려도 새로운 경치를 보는 즐거움과 비할 바 아니다. 새로운 영역의 공부를 시작할 때, 전혀 다른 영역의 사업을 시작할 때 그 설렘이 없다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설렘은 새로움이다. 눌러앉아 만족하고 챙기고 지키고 다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보내고 떠나고 나누고 도전하는 것이다. 내가 있고 내 것이 있고 그것을 담을 공간과 시간이 있다면 설렘은 생길 수 없다. 만날 때는 물론 생각할 때조차 설렘이 사라져버린 사랑은 이미 끝난 것이다. 늘 설렘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관계가 사랑의 관계다. 첫 키스 그 얼마나 설레는 순간인가. 그러나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날도 다시는 첫 키스를 할 수가 없다. 설렘은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다. 밀도와 차원을 높여 이동할 뿐이다.
설렘은 어리석음이 아니다. 서투름도 아니다. 단순한 호기심도, 낯선 것에 대한 무조건적 동경도 아니다. 꽉 잡아 쥐고 머물지 않는 자에게 내려진 은총의 에너지이다. 나와 관련된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것으로 만들어 가둬두고 익숙해지고 친해진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렇게 누적된 땅위엔 단 한 점의 설렘도 자랄 수 없다.
설렘은 꿈과 희망이 현현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저마다 깨닫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정성으로 이루고도 떠남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즐겁고 유쾌해진다. 내 몸은 무한히 확장하기 시작한다. 버리고 떠나면 아쉬움이 남지만 두고 떠나면 깔깔한 그리움만 남는다. 언제고 행복함을 환기시켜주는 그런 그리움만 남는다.
정치를 하는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 공부를 하는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작은 사람, 재주 있는 사람, 능력 없는 사람, 예쁜 사람, 못난 사람. 그 누구라도 설레는 삶이면 족하지 않을까. 녹슬어 숨어버린 설렘의 안테나를 한껏 끄집어낸다. 무턱대고 흘러가고 있는 곳에서 다시 일어나 설레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황보 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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