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안 1천리를 가다]감포 지킴이 하덕원씨

"1920년에 개항해 인천과 함께 1937년 읍으로 승격한 감포에 대한 역사 자료가 크게 부족합니다. 근대사를 중심으로 감포에 대한 자료를 찾고 수집해 감포를 널리 알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10년 전부터 고향 감포에 대한 자료 수집에 열심인 하덕원(46) 씨. 그는 요즘도 자신이 수집한 근·현대사의 사진 등을 감포초교 동기회나 산악회 등의 인터넷 카페 등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괜찮다. '예전에 본 듯한 자료들을 구하기 힘들텐 데 어디에서 구했느냐.' '너 때문에 감포에 대해 더 알게 됐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더 열심히 해 줄 것을 격려할 땐 힘이 솟는다.

"10년 전부터 송대끝에 감포나 송대말의 역사 등을 기록한 자료를 담은 입간판을 세우려고 했으나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입간판 뒷면에는 송대끝 바닷가에 일본인이 만들었던 수족관과 나무다리, 찻집 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자료 사진을 수집해 놓았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감포에 대한 역사를 알게하고 단 1분이라도 더 머물러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아직 고증자료와 수집 등에 따른 비용이 모자라 못하고 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근·현대사 자료들이다. 너무 옛 것은 고증자료를 찾기 어렵고 현재와 가까워 좀더 친근해 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자료를 먼저 수집하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로는 발전이 덜 된 고향이 좋다."는 그는 일제시대때 감포에서 살았던 집에 일본인들과 그 후손들이 다시 찾아 오는 것을 지켜 보면서 이제는 사라져 가는 일제시대 건물이나 팔조리 성, 거마장의 모습 등 지역의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남겨 놓아야 되겠다며 오늘도 뛰고 있다.

경주·김진만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