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남 화순 운주사 발길 닿는 곳마다 부처님

눈길 가는 골마다 석탑이 우뚝 솟아 있고 발길 닿는 산자락마다 크고 작은 불상이 선 채로, 앉은 채로, 혹은 누운 채로 반기는 전라남도 화순의 운주사(雲住寺).

영구산(靈龜山) 자락을 가로지르는 평평한 골짜기에 위치한 운주사는 많은 석탑과 석불, 가람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배의 형국을 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도참사상을 배우고 온 도선국사가 중국에서 발원한 땅의 기운이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뻗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곳에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는 창건설화와 관련이 깊다.

실제로 동국여지승람(1481년)에도 '운주사에 불상과 불탑이 각각 1천 기씩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천불천탑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현재는 석불 90여 기와 석탑 20여 기가 남아 있으나 이마저 문헌과 책자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사찰의 지형도 특이하거니와 석탑과 석불의 형태 또한 예사롭지 않다. 탑과 불상은 어찌 보면 제멋대로인 것처럼 독특하다.

대개의 석탑들은 자연석을 기단으로 삼아 원형의 옥개석(지붕석)이나 항아리 모양의 돌, 혹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그대로 쌓아 올린 것들이다. 층수도 3, 5, 7, 9층 등 다양하며 제각각 개성을 지니고 있다. 기단과 탑신석 면에는 연꽃문양과 십자, 마름모꼴의 기하학적 무늬가 돋을새김이나 선(線)새김으로 혼재돼 있다.

석탑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우리가 익히 아는 국보급 탑들과 그 형태 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불들은 확연히 다르다.

평면적이며 토속적인 얼굴모양하며 돌기둥을 그대로 몸체로 쓴 점, 어색하면서도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수인(手印), 규칙적인 선을 쭉쭉 그어 표현한 법의(法衣) 주름 등이 하나같이 단순하고 투박하다. 크기도 10m에 달하는 거구에서 수십cm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운주사 석불에서는 흔히 알고 있는, 대웅전 한 가운데에 황금빛 가사를 걸친, 부처의 위엄이나 자비로움은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친근감이 넘친다.

석불들은 운주사 안 골짜기의 커다란 바위 아래엔 어김없이 있다. 배치도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 아내, 아들, 딸 등 가족이 오롯이 앉아 있는 모습들이다. 우리네 이웃의 얼굴에서나 봄직한 소박함과 정감이 묻어난다. 이 때문에 운주사 석불은 다른 곳에서는 유형을 찾아 볼 수 없는 나름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특징들을 좇아 차근차근 석탑과 석불들을 둘러볼라 치면 운주사의 일주문을 지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9층 석탑이다. 기단부는 역시 천연석이며 탑신석 중 맨 위의 3층은 아랫부분의 연꽃 문양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석탑의 오른편에 바위 단애 밑에 가족불상이 정겹다. 이어 눈을 끈 것이 석조불감.

운주사 골짜기 중심부에 속하는 곳에 있는 석조불감은 팔작지붕 안에 두 명의 부처가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법의의 주름은 바깥의 석불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석조불감 가까이 있는 원형 옥개석을 7단 쌓은 원형다층석탑은 특이한 탑형식이 이채롭다.

대웅전 오른쪽에 난 돌계단 길을 오르면 거대한 층암절벽에 마애여래좌상이 돋을새김돼 있다. 운주사 가람과 초입을 굽어보듯 미소 짓고 있다.

옆으로 난 숲길을 더 오르면 공사바위. 도선국사가 운주사를 창건할 당시 이 곳에 올라 공사 진행을 지휘한 바위로 일주문에서 S자형의 운주사 탑과 불상들의 배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공사바위를 내려오는 길에도 석불군은 반갑게 맞이한다. 오랜 세월에 깎인 콧등과 흐려진 입술이지만 의연한 자태만큼은 처음과 지금이 같으리라.

마애여래좌상 아래 있는 항아리탑은 그 옛날 이 곳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이 내세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팔자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염원을 담아 자신들의 발우를 쌓아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운주사 절 마당을 지나 서쪽 편 기슭을 오르면 너른 마당바위에 이어 발가락이 조각된 시위불(머슴부처) 뒤로 운주사의 자랑거리인 와불이 나타난다.

머리 쪽이 15도 정도 낮게 부부처럼 나란히 누워 있는 와불은 세계에서 유일한 형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불은 길이 약 12m, 아내불은 약 11m로 자연석에 각각 앉은 모습과 선 모습으로 편안하게 하늘을 향해 누워 있다.

운주사 천불천탑이 밤하늘의 천체를 지상에 구현했다는 설화에 따르면 이 와불은 운주사 전체 구도에서 북극성에 해당한다. 아니나 다를까 와불 아래편에 칠성바위가 있다.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칠성바위는 크기가 다른 7개의 둥글넓적한 바위를 별자리 모양대로 배치하고 있다. 별의 밝기와 방위각에 맞춰 크기와 배열을 달리 해 놓았다.

이 칠성바위 맞은편을 보면 상층기단에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올려놓은 동냥탑(거지탑)이 보인다. 고초를 겪고 있는 민초들의 열망을 모아 탑을 쌓은 듯 하다.

일반적으로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은 그 조각 형식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 축조물로 추정된다. 그러나 몇 차례의 학술조사에서도 정확한 창건연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운주사 천불천탑은 미륵신앙의 본원지로 그 신비감을 더 하고 있다.

◇운주사 가는 길=구마고속도로 칠원 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함안·진주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청명한 가을하늘과 너른 들판을 지나 한참을 달리면 주암IC가 나온다. 이곳으로 나와 광주'주암 방향으로 우회전, 22번 국도를 차로 약 30분 가면 화순읍. 읍내에 진입하지 말고 외곽도로에서 능주 방면 29번 국도로 방향을 바꿔 다시 20여분 가면 춘양면 방향 818번 도로가 나온다. 춘양면을 지나면 운주사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를 따라 곧장 가면 운주사 초입에 도착한다.

글·사진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6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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