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가을 단상

일 년 가운데 가을의 풍광이 제일 아름답다. 가을은 황금들판과 오색단풍으로 온 세상을 꾸민다. 누렇게 익은 벼로 들판은 황금색이고 온 산은 눈부시게 찬연한 오색 비단으로 뒤덮여 있다.

바람 따라 대지의 바다에 일렁이는 황금물결은 가을만이 주는 감동이며, 육중한 산악을 송두리째 화려하게 꾸민 가을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을 온통 형형색색 물들인 단풍은 신비스럽도록 찬란하다. 실은 단풍은 한 해 동안 활엽수의 생육을 위해 목숨을 다한 희생물이다. 이토록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태는 그 순수한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황금들판에서 풍요로운 향기와 단풍으로 장식된 산에서 아름다운 향내를 맡고 느끼게끔 한다.

인생의 단풍은 은발, 황금물결은 주름살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한 노인들의 인생의 단풍이랄 주름살과 은발을 통해 단풍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뭇 생명의 거름이 될 낙엽이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듯이 무덤을 보면 연민보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주름살과 은발과 무덤에 감사와 존경의 향기가 배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냄새를 맡으면서 산다. 향긋한 냄새는 자꾸 맡고 싶어 하고 악취는 본능적으로 피하는 게 사람이라 천성적으로 사람은 향을 좋아 한다. 그러나 향 맡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향을 피우는 데는 인색한 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향냄새를 즐기면서도 후천적으로 향 피우는 행동은 건성으로 하고 남이 애써 피운 향에 무위도식 하려는 경향이 짙은 세태이다.

향은 예로부터 악취를 없애고 부정(不淨)을 떨어버리는 의미를 가졌다. 일찍부터 향은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더러운 것을 없앤다고 하여 제사 지낼 때나 사찰에서 사용해 왔으며,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오늘날 향은 향수로 제품화되어 없어서는 안 될 일상용품이 되어 있다.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은 천연향은 해충들이 싫어하고 인공 향인 향수와 화장품향 따위는 비교적 악충들이 좋아하는 편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향이 좋아 향을 찾고 벌레들은 향이 싫어 도망간다. 같은 생물인데도 전혀 다른 생리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모기를 들 수 있다.

늦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 연못에 핀 연꽃은 바람결 타고 밤낮으로 연향을 사방으로 풍긴다. 연향은 분홍빛깔 연꽃과 더불어 연못을 찾는 사람들에게 향기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낮에는 연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맑고 은은하면서도 진한 연향을 맡을 수 있어 좋고 밤에는 연향이 모기를 쫓아줘서 고맙고 즐겁다.

진흙 속에 뿌리를 깊숙이 박아 혼탁한 물을 정화하여 얻은 것이 연꽃이며 연향이다. 그냥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정화시킬 때 발생한다. 고진감래의 향이라고 할 수 있다. 향은 스스로를 태워야만 둘레를 맑게 하고 좋은 향기가 나듯이 사람도 향처럼 이웃에 이익이 되는 삶을 살 때 즉, 덕행을 쌓을 때 사람의 향기가 난다.

사람이 죽으면 물과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 토양의 기름진 거름이 되기까지 고통스러울 정도의 악취가 난다. 악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살아생전에 향을 피우는 일이다. 이 세상에 향을 가능한 많이 피워놓아야 그 향으로 하여금 중화시켜 악취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말과 글로써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진실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향기로운 마음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 나비와 벌과 바람에 자기의 달콤함을 내주는 꽃처럼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베풀어 주는 마음이다.

남의 착한 일과 훌륭한 일을 좋아하며 따라하고 기뻐해주는 것이 마음의 향을 피우는 일이 아닐까. 향 피우는 마음이 세상을 만들고, 향기로운 마음이 세상을 유지해가며, 향내 나는 마음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자신의 덕행을 쌓을 수 있다. 예년과는 달리 유독 어수선한 올 가을에 이 구석 저 구석 국화향이라도 가득 피워 구석구석 찌든 악취가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약수(한국예총 경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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