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 560돌이 되는 올해의 한글날은 매우 뜻 깊은 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의 중흥기를 맞는 오늘날 우리들은 세종 대왕이 직접 창제하신 한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휴대 전화의 자판을 보자. 휴대 전화에서 모음은 天(·), 地(ㅡ), 人(ㅣ) 석 자로 수십 가지의 모음을 다 적을 수 있으며 자음은 동일한 자판을 한 번씩 누를 때마다 ㄱ(예삿소리)→ㅋ(거센소리)→ㄲ(된소리)의 순으로 바뀌게 된다.
모음은 천지인을 본뜬 ·, ㅡ, ㅣ의 조합으로 나타내고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습을 형상해서 기본자를 만들고 다시 가획의 원리로 다양한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음소 문자이다. 이러한 한글의 형성 원리에는 음양의 철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이러한 전통이 한글 창제로 이어져 내려와 이제 정보기술과 접목되어 그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21세기를 정보화 시대라고 말한다. 바로 짧은 시간 내에 정보화의 콘텐츠를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축적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우수한 한글의 조합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한글이 이제 부(富)를 창출하는 원천이며, 국가 발전의 동력이다.
21세기를 흔히 문화 자본의 시대라고 한다. 우리가 가진 우수한 문화 기반을 세계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중국은 경제 대국화와 동북아 공정으로, 일본은 우경화와 군사 재무장으로 주변국과 국경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미국은 자국 국익 우선의 동맹국 정책을 확산하는 등 결코 만만찮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하는 국가적 목표와 방향은 무엇일까?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12위에 이르는 언어 강국이자 정보기술 강국으로서 '동북아 문화 동반자 공동체'를 주도할 만한 역량을 가진 나라이다. 이제 한국어를 단순히 어문 규범에 맞느니 틀리느니 하는 문제에 함몰될 것이 아니라 우리 국어의 우수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휴대 전화 보급률과 우수한 기술의 축적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글의 우수성과 효율성 덕분에 우리나라 휴대 전화가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최근 불어닥치고 있는 한류 열풍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 한글과 우리말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 보급을 통해 아시아를 한반도 공동체로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었으며, 또 언어적으로도 다양한 차이를 보여 주었던 곳이 바로 아시아 지역이다. 그만큼 아시아의 연대와 통합은 운명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이 지역의 문화 공동체의 실현을 도모해야 할 적절한 기회가 왔다고 판단된다.
한글날만 되면 인터넷 언어의 규범 파괴가 심각한 수준이다, 영어 조기 교육이 문제라고 떠들어 대는데 이젠 생각을 조금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갈등하고 대립했던 일본이나 중국의 젊은이들이 요사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야단인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영어 조기 교육을 위해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돈을 쓰고들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우리 말과 글을 파괴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의 언어 의식은 우려할 만하다.
우리는 지금 우리말을 통해 우리 문화를 세계에 보급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를 맞고 있다. 나라 안으로는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됨으로써 국민 개개인은 우리 말과 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정부는 국어를 중흥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뜻 깊은 계기가 마련되었다. 나라 밖으로는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중남미, 유럽 등지에서도 우리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국외에 보급함으로써 언어문화 권역 확장을 통한 시장 확대와 경제적 부가 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우리도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이나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처럼 선진국의 성공적인 문화원을 본보기로 하여 우리말과 문화를 세계인들과 더불어 공유하는 데에 나서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과제는 국제화를 위해 공중파 한국어 교육 방송을 운영하는 일이다. 한글과 한국어를 문화 창조와 국제 문화 교류의 연모로 힘써 다듬고 널리 알리는 것이 바로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과 한글날 국경일 승격의 의의를 살리는 일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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