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참으로 이상한 일

옆집 똥배 아저씨는 술고래입니다. 혼자 구멍가게를 지키다가도 어디 술자리 냄새만 나면 강아지 망망이한테라도 가게를 맡기고 그냥 달려가 한 다리를 걸칩니다. 이 똥배 아저씨의 술주정을 온갖 잔소리 큰소리로 쪼아대며 사는 깽깽이 아줌마는 틈만 나면 아무나 붙잡고, 아저씨가 지금까지 마신 술이 안동댐 물의 반쯤은 될 거라고 넋두리를 풀어놓습니다. 아저씨를 해롱해롱하게 만드는 술이 공산당보다 더 나쁘다고 하십니다.

똥배 아저씨와 깽깽이 아줌마의 전쟁은 끊일 날이 없습니다. 해질녘이나 저녁 늦게 또는 한밤중에 똥배 아저씨가 고주망태가 되어 '섬마을 선생님'을 앞세우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아줌마는 또 찢어지는 목소리고 "아이고 이 웬수 덩어리. 나가 뒈져라! 내가 미쳐, 증말 못살아. 내가 이 집구석을 나가야지"로 시작하여 온갖 욕설을 있는 대로 퍼부어 댑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고도 이상한 일은, 아저씨가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으며, 깽깽이 아줌마가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간 일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제도 예외 없이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아줌마가 아저씨를 인근 시골 장에 김장배추를 사러 보냈는데, 우리의 똥배 아저씨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또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배추 두 포대를 버스정류소에 옮겨두고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걸치다가 버스가 오자 얼른 집어타고 돌아온 아저씨. 그런데 이걸 어쩌나.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로 들어설 때쯤 술이 깨면서 문득 버스정류소에 두고 온 배추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아저씨는 허겁지겁 다시 버스를 타고 되돌아가 대합실 의자에 기대 선 배추포대를 울러 메고 다시 버스에 올랐는데, 아뿔사, 이번에는 또 버스 안에서 깜박 졸다가 글쎄 배추포대를 버스에 그냥 두고 달랑 몸만 내렸다는 것입니다. 달아나는 버스 꽁무니를 쫓아가다가 허탕치고 오는 길에 공사장 근처 국밥집 술주전자에 코를 박은 아저씨. 저녁 늦게 물에 젖은 강아지 꼴로 기어 들어온 아저씨를 코너에 몰아세우고, 우리의 깽깽이 아줌마는 사생결단을 내리듯 핵폭탄을 퍼부었지요. "니 죽고 내 죽자, 이 웬수 덩어리야…!?"

'오늘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겠지?' 잔뜩 기대하며 이른 아침부터 아저씨네 구멍가게 앞을 기웃거렸는데 웬걸, 닭다리라도 뜯었는지 이를 쑤시며 나타난 아저씨는 다른 날보다 더 불룩한 똥배를 내밀었고, 부엌 쪽에선 깽깽이 아줌마가 다정하게 망망이를 어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담 밑의 국화꽃들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아니 아침부터 집안을 기웃거리는 내 거동이 수상하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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