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업들 '상경계열 선호'…전공 외면현상 부추겼다

대학 전공과 취업 분야가 '따로국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4년 동안 적지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공부한 대학 전공이 실제 취업 시장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대학생들은 전공 과목의 학점 관리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게다다 '인재 양성'이라는 대학의 존재 이유마저 무색해질 형편이다.

◆이중'고(苦)'에 시달리는 학생들=통계학을 전공하는 최이석(25) 씨는 "통계청 등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정부기관도 노려봤지만 모집 인원도 적고 경쟁률도 상상을 초월한다."며 "학기 중에는 학과 시험에 매달렸으니 올 겨울에는 학원에 다니며 대기업이나 공기업 시험 준비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김모(28·여) 씨는 3년째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물론 전공과는 큰 관련이 없다. 김 씨는 "전공을 살리고선 도저히 취업할 길이 없는데다 딱히 상담이나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며 "취업 준비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전공 외면' 현상은 이공계도 다르지 않다. 김태우(28·경북대 금속공학과) 씨는 전공은 일찌감치 접고 최근 대구의 한 공연기획사에 취직을 했다. 김 씨는 "전공을 살려봐야 비전이 보이지 않아 평소 관심 있던 분야로 진로를 택했다."며 "생소한 분야라 배우고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모 철강회사의 해외무역직에 취직해 내년 1월부터 출근한다는 이모(26·경북대 전자전기학부 전공) 씨는 "학교 성적과 국제 경영학이나 무역 영어 등을 따로 공부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외면도 한 몫=상·경계열 졸업생들을 선호하는 기업체들의 성향도 전공 외면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대졸자 취업현황과 인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대구종합고용지원센터의 역할 강화 방안(이동기 영남대 학교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 기업체 108곳 중 33곳(19.5%)이 경영학과 출신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법학과와 경제학과 출신이 각각 13곳(7.7%)이었다. 경영학과 졸업생들의 취업 분야와 전공 일치도는 69%~95.1%로 의학계열과 맞먹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학생들의 취업 희망 업종과 기업들의 구인 업종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연구팀이 지난 10월 16일부터 27일까지 대구·경북 4년제 대학 인문·사회계열 전공자와 취업준비생 등 6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공공행정(25.1%), 사업서비스업(18.5%), 교육서비스업(18.0%), 금융·보험업(13.2%) 등의 순으로 취업을 희망했다. 반면 지역 기업체들은 제조업(30.6%), 교육서비스업(14.8%), 도·소매업(11.1%) 등의 순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공 외면 현상이 계속되면서 상당수 대학이 인기없는 학과나 전공을 폐지 혹은 축소하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을 벌이고 있다.

◆어떻게 풀까=전문가들은 "취업률이 낮은 계열 출신의 전공자들을 위해 특화된 취업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상경계열 학과를 제외하면 진로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은 전공과 거리가 먼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직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대학은 공무원 양성 기관으로 전락하고 대학의 기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열별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한편, 기업의 정보와 지역 노동시장의 동향, 인력의 수요·공급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동기 영남대 학교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고용촉진위원회나 계열별 취업 특화 교과 과정을 개발하면 취업을 위한 학생들의 사교육 비용과 기업의 재교육 비용을 모두 절감할 수 있다."며 "특히 대구·경북의 40여 개 대학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졸업생들에 대한 인력풀을 구성하고 전공 영역과 관련된 인재를 적재적소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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