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에서 못보던 고기가 잡히네"

따뜻해진 바다…아열대 어류 속속 출현

지난 6일 오후 강원도 주문진 인근 해역에서 자망을 끌어올리던 어민 이천식(57) 씨는 깜짝 놀랐다.

그물에 가득 찬 도루묵 사이에서 바다 생활 40년 만에 처음 보는 어종이 있기 때문. 장어 같이 생겼지만 일반 장어보다는 입이 뾰족하고 길이도 2m나 됐다.

곧바로 국립수산과학원의 전문가에게 감별을 의뢰한 결과 툭 튀어나온 입으로 사람을 잘 문다고 해 이름 붙여진 '하모', 즉 갯장어였다. 난류성 어류로 주로 우리나라 남해안과 동중국해에서 서식하는 갯장어가, 그것도 길이 2m 무게 20㎏이나 되는 초대형이 동해에서 발견된 것이다.

동해바다가 '수상하다.'

난류성·아열대 어류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고 수온도 낮게는 1℃, 높게는 4℃까지 올랐다. 주민들은 해양 생태계 변화를 규명해줄 전문기관 실태조사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난류성 어종 판쳐…정착 가능성도

울릉도 근해는 난류성·아열대 어종이 이제는 희귀한 것이 아니다.

아열대 어종으로 제주도 일대에 서식해온 능성어, 파랑돔, 강담돔 등이 수년 전부터 계속해서 잡혀 이제는 아예 울릉도 토종 어종으로 인식될 정도라는 것. 울릉수협 김정호 상무는 "남태평양, 제주도 일대에 서식 중인 청대치, 청줄돔, 두동가리돔, 나비고기 등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20여 년째 울릉도 바다 속을 촬영해온 정봉근(전문 다이버 강사) 씨는 "남해에서나 볼 수 있었던 흰꼬리볼락, 쏠배감팽(라이언-피시), 해마, 독가시치 등이 지난해 여름부터 울릉 근해 바다에 자주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스킨스쿠버 마니아인 조준호(울릉읍 저동리) 씨도 "요즘 울릉도 바다 속에 들어가면 처음 보는 어류들이 많아 어류도감을 찾아보면 남해안이나 제주지역에 서식하는 어류다."고 했다.

또 제주도 해상에서 조업해온 복어잡이 선박들이 최근에는 20여 척이나 울릉도까지 올라와 저동항에서 정박하며 복어를 잡아들이고 있다.

동해에서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쪽 바다로 내려갔어야 할 오징어떼가 여전히 머물고 있다. 강원 연안에서 올 1월 초 보름 동안 잡힌 오징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0%나 많은 500t에 이른다.

사정은 남쪽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3월 중순이 넘어서야 나타났던 망치고등어가 지난달부터 대량으로 잡히고 있다. 지난달 부산지역의 망치고등어 어획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배가 넘는 411t에 이를 정도며, 이달 들어서도 꾸준히 잡히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김은 따뜻한 날씨에 수온이 올라가면서 미역 잎이 녹아내려 생산량이 줄었다. 지난해 11, 12월 양식 김 생산량은 4천522t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3% 감소했다.

이밖에도 수산과학원은 산란하기 위해 3월 초에나 남해안으로 올라오던 멸치떼가 수온 상승으로 이달 말이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올해와 같은 이상 기후가 지속되면 아열대성 어종의 연안 출현이 잦아지고 나아가 아예 정착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수온 상승 탓…생태계 규명 시급

동해안의 이런 현상은 최근 수온이 13~15℃로 지난해보다 4℃, 평년에 비해서는 1℃가량 높은 고수온 현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해양수산청 울릉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이맘때 울릉 근해의 표층 수온은 평균 10.8℃ 정도였는데, 올해 1월 중엔 평균 12.9℃로 무려 2.1℃나 올라갔다. 이는 제주지역 서귀포 연안의 13.7℃와 큰 차이가 없는 수치이다.

수산과학원 자원관리팀 김정년 박사는 "공기를 1℃ 올리는 것보다 물을 같은 온도로 올리는 데 에너지가 10배가량 더 소요된다고 볼 때 바닷물이 1℃ 상승한다는 것은 지상에서 기온이 10℃ 이상 상승한 것과 같은 효과"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해양 생태계 변화를 규명해줄 실태조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울릉도 어민들은 "동해바다의 난류성 어종은 엘니뇨 현상 등의 영향으로 난류를 타고 이동해온 물고기떼로 추측하고 있으나 울릉도에는 이러한 어류 이동 상황을 규명해줄 수산·어류 연구 전문기관이 전무한 상태"라며 "해양연구소를 설립해 전문적인 연구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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