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경(30.여)씨는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메신저에 접속하는 일이다. 자동 로그인 설정을 해 뒀으니 컴퓨터를 켜는 일 자체가 메신저에 접속하는 행위인 것.
커피 한 잔을 마시고와서부터 30분 쯤은 친구들과의 채팅 시간이다. 내용은 "어제 저녁에는 뭐했니? 데이트할 애인 있어서 좋겠다.", "XX쇼핑몰에 세일 시작했다던데 언제 놀러갈까?" 등의 시덥잖은 일상적인 대화들이 대부분. 박 씨는 "아침 일찍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료하게 놀 수도 없으니 메신저가 하루 일과를 여는 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메신저에 등록돼 있는 버디 수는 120여명. 직장동료와 업무적인 관계를 맺은 외부사람들, 그리고 친한 친구들로 분류된다. 그 중 그녀가 주기적으로 대화를 하는 상대는 고작해야 10여명. 대신 나머지 110명에게는 가끔 '쪽지보내기' 기능을 통해 친분관계를 유지한다. "얼굴 보기엔 부담스럽고, 시간도 없고, 대신 한마디 말로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죠." 그녀의 주장이다.
▶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은 메신저에 '로그인'(log in)하고 '로그아웃'(log out)하는 일이 됐다. 메신저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쫓기며 살다보니 밥 한끼, 술 한 잔 할 여유는 없지만 메신저를 통해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해주고, 안부인사 한 마디 날려주는 것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막연한 나의 인맥관계가 메신저 속에서 카테고리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지인들의 생일까지도 팝업을 통해 잊지 않도록 알려주는 것도 장점.
메신저의 폭발적인 인기에는 참을성 없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재깍재깍 충족시켜 준다는 점도 한 몫 했다. 1초의 지루함도 견디지 못하는 '퀵백(Quick back)세대'. 말을 걸면 즉각 상대방의 반응이 날아오고, 마우스 클릭만으로 상대방에게 파일전송까지 간단히 해결할 수 있으니 메신저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한때 호황(?)을 누렸던 이메일은 그 용도를 상당부분 메신저에 잠식당했다. 상대방이 언제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줄 지도 모르는 이메일은 이제 한물갔다.
메신저 사용자 2천500만명. 인터넷 조사 업체인 '코리안클릭'이 올 2월 말 집계한 결과다.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가 약 3500만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인터넷 이용자의 70%가 메신저를 사용하는 셈. 특히 직장인들의 메신저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다. 간단한 업무연락 등은 메신저로 통하는데다, 파일전송 등이 쉬워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80% 이상이 하나 이상의 메신저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메신저 사용을 차단하는 대기업들도 상당수다. 업무 중 딴짓으로 시간을 보낼 우려가 높은데다, 회사 기밀 등이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 이런 경우에는 많은 회사들이 사내메신저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은행원 황인기(29) 씨는 "외부커뮤니케이션을 단절시킨다는 단점은 있지만 회사 사원들 간의 내부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며 "메신저를 통해 서로 잘 알지 못하는 회사 동료들간에도 부담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했다.
▶선물도 요즘은 메신저로 한다.
SK텔레콤에서는 네이트온 메신저 대화 중 친구에게 이모티콘을 보내면 쿠폰에 바코드로 저장돼 오프라인 매장에서 해당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기프티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스타벅스 카라멜마끼야또 외 3종과 세븐일레븐 편의점의 단팥찐빵, 하겐다즈 외 13종 등 약 20여 개의 상품이 서비스되고 있으며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상품들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옥션'과 손잡고 '메신저 쪼르기 서비스'를 선보였다. 대화 상대에게 자신이 가지고 싶은 물품을 사달로 조를수 있는 서비스다.
▶메신저도 세대차(?)
메신저를 이용하는데도 세대차가 드러난다. 연령대별로 선호하는 메신저가 제각각인 것. 가입자수 2천500만명을 넘어서며 부동의 1위 자리를 확고히 굳힌 '네이트온'은 전 연령대가 가장 선호하는 토종 메신저.
그 중에서도 20~30대의 호응이 대단하다. 네이트온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가입자수를 거느리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N 메신저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선 데는 국민 커뮤니티 '싸이월드'와의 연동이 주효했다. 메신저에서 미니홈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보니 싸이월드 가입자의 상당수가 네이트온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MSN은 현재 전세계 무려 2억400만 명이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유독 2위로 밀려 있다. 10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메신저는 '버디버디'다. 이성 간 궁합서비스와 편리한 친구찾기 등 재미있는 서비스로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게다가 '다수의 친구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다음 메신저'는 중년층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아무래도 다음 카페 등의 이용자가 중년층이 많은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 메신저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모든 발명의 시작은 반쯤의 호기심과 반쯤의 장난. 메신저가 처음 탄생하게 된 배경도 똑같다. '인터넷 상에서 내 친구는 뭘 하고 있을까? 안부를 물을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메신저.
이 최초의 메신저는 이스라엘의 미라빌리스가 개발한 'ICQ'(I Seek You:나는 당신을 찾는다)였다. 즉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인스턴트 메신저'라고도 불린다.
그 후 1996년 미국의 아메리카온라인(AOL)이 회원의 접속 상태를 보여주는 버디리스트 서비스를 시작했고, 1997년에 실시간 대화기능을 추가했고, 야후'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T업체들이 앞다퉈 메신저를 선보이면서 메신저 사용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에는 1998년 '디지토닷컴'이 처음 소개했다.
메신저 보급이 확대되던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과 포털이 급성장하는 때와도 일치한다. 국내에는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는 '네이트온'을 비롯해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미스리', 친구 찾기 기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버디버디', 세계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SN메신저' 등 수십 가지가 넘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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