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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다] 작가로 이끈 연필 한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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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폴 오스터 지음/열린 책들 펴냄

인생에서 야구가 무엇보다 중요한 여덟 살 소년이 있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야구 선수는 'Say-Hey Kid'.(50, 60년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명성을 날린 윌리 메이스의 별명. 당시 뉴욕 자이언츠팀 소속.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Say-Hey"라는 인사를 건네며 함께 동네야구를 즐겨한데서 연유)

그 해 봄, 소년은 난생 처음 자이언츠와 밀워키 브레이브스팀의 경기를 보게 된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어느 팀이 이겼는지, 누가 안타를 치고 홈을 밟았는지 세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과 어른들 곁에서 다른 관중이 다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그라운드를 바라본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정과 땀과 승부가 뒤범벅되었던 그라운드엔 차츰 어둠이 깃들고, 소년은 담소하는 어른들 곁에서 현재 스물 네 살이라는 윌리 메이스의 나이와 검은색과 주홍색이 섞인 야구모자가 그에게 잘 어울렸던가를 생각하고 있다. 시간은 제법 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는 어른들의 뒤를 따라 소년은 출입문 쪽으로 가다가 로커룸에서 나오는 윌리 메이스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

바로 3m 앞에서 마주 친 'Say-Hey Kid'를 향해 간신히 걸어간 소년은 자신의 온 용기를 다 짜내어 그에게 말한다. "메이스 씨,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젊음의 활력이 온몸에 넘쳐흘러 말을 하면서도 펄쩍펄쩔 뛰는 그가 상냥하게 대꾸한다. "물론이지 꼬마야. 해 주고말고. 연필 갖고 있니?"

아, 어쩌나! 소년도 부모님도 다른 어른들도 모두 연필을 갖고 있지 않다. 위대한 윌리 메이스는 아무도 필기도구를 가지지 않았다는 게 분명해지자 어깨를 으쓱하며 소년에게 말한다. "미안하다, 꼬마야. 나도 연필이 없어서 사인을 해줄 수가 없구나." 여덟 살이나 먹었으면서 절대 아기가 아니니까 울어서는 안 된다고 온갖 애를 쓰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소년은 눈물을 흘린다.

그 후 소년은 언제나 주머니에 연필을 넣고 다니게 된다. 외출할 때는 연필이 주머니에 들었는지 확인하는 버릇마저 생기게 되고, 그 습관이 마침내 몇 십 년을 넘기자 어른이 된 소년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혀 작가가 되었다고 말해 주게 된다.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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