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홍섭 作 '터미널'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강원도 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 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버스 노선의 맨 끝 지점이 터미널이다. 터미널은 그러나 종점이자 출발점. 천 갈래 만 갈래 길이 터미널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내 삶의 터미널에 젊은 아버지가 계셨다. 교각처럼 튼튼한 종아리와 코끼리처럼 듬직한 등판. 아버지가 옆에 서 계시면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역전됐다. 기다리는 자와 기다리게 하는 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터미널은 아버지와 내가 바통터치 하는 곳. 아버지의 나이를 빼내어 내 나이를 채웠으며 나이를 덜어낸 아버지는 이윽고 어린애가 되셨다. 기다리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아버지. 날마다 어려져서 마침내 오셨던 그곳으로 가실 것이다. 터미널로 아주 돌아가실 것이다.

장옥관(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정상화가 국가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하며, 최근 KB금융지주 조사에서 집값 하락 전망이 늘어난 사실을 공유했다. 또한,...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7000선을 돌파하며 급등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의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는 시스템 오류로 접속 ...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을 담당했던 신종오 서울고법 판사가 6일 법원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유서에는 '죄송...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