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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신 넋, 숭례문에 머리 조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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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하며 새까맣게 태운 성냥개비처럼

허망하게 흩어져 쌓여있는

숭례문의 숯이 된 기둥들과

서까래 잔해들을 내려다본다

서울의 대문인 남대문이

시커먼 연기와 불꽃을 내며

연신 쏘아대는 소방대원들의 물길에도

장장 5시간을 타서

와르르, 기왓장이랑 처마 끝이 통째로

아래로 던져지며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그 뜨거운 것을 가슴으로 안았다

시커멓게 우리들 가슴도 타들어갔다

조선의 정신인 인의예지를

우리는 그렇게 이별했다

곱고 단아했던 옥빛 단청들이

타오르는 불 속으로 어른거릴 때

그 아름다운 푸른 저고리 소매 끝이

시커먼 연기 속으로 환영처럼 사라져갈 때

우리는 늘 옆에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던

한 자상한 아버지를 잃었다

서울역에서 내려

넓은 역 광장에서 제멋대로 뒹굴며

소주병을 놓고 웅크리고 있는 노숙자들을 피해

왼쪽으로 한 10분 이상 걸어가면

찻길 한복판에 이층 누각 숭례문이 당당하게 앉아있다

밤이 오면 그 숭례문 이층에서 추위를 피해

깡통에 나무조각 불을 피워놓고

노숙자들이 잠을 자기도 했다니

그 또한 갈 곳없는 노숙자들에게

아버지의 깊은 마음씀이 되어준 것인데

보살핌에는 대책 없는 그 우리 아버지를

우리는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는데

그 엄청난 임란도 병란도 6·25도 가슴으로 삭이며

600여 년의 풍상을 늠름하게 견뎌낸

조선의 얼굴이며,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보 1호 숭례문을 제대로 대접했어야 했는데

조국을 일으키기에 우리 아버지들처럼 잠시도 평안하게

누워있지 못하고 세로로 쓴 글씨,

문으로

예를 다하며 늘 서서 가르치던 문

관악산의 화기를 서서 눌러주던 문을

우리는 우리의 무관심으로 하루아침에

잿더미 되어 내려앉게 했으니

역사의 죄인으로 머리 조아립니다

박정남(전 대구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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