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석탄, 백탄 다 타버린 속이라 짐짓 무덤덤하다고 자위를 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개원의들 사이에서 지극히 비의학적인 돌림병이 나돌곤 한다. 바로 날씨가 맑을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는 '봄날 우울증'이다. 특히나 토요일 오후 진료를 위해 병원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정겨운 풍경들, 봄나들이라도 나가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은 달콤한 유혹을 넘어 차라리 아프기조차 하다. 스스로를 일컫는 '땡땡이족' - 출근 시간 '땡'에 맞춰서 퇴근 시간 '땡'까지 한순간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개원의사 신세에 대한 답답증과 서글픔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때이기도 하다. 물론 그 좋은 봄날 주말에 아픈 몸을 이끌고서 병원으로 찾아온 환자들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러운 투정이겠지만 말이다.
연전에 봄바람 한 번 쐬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서 마을 뒷산을 오르곤 한다. 그날따라 오후 진료 시간에 10분 정도 지각을 하고 말았다. 허겁지겁 땀을 닦고서는 대기하고 있던 환자분들에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는 가벼운 사과 겸 인사를 하고는 여느 때처럼 진료를 마쳤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친구 녀석에게서 걱정 반, 위로 반의 전화를 받았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더니만, 지금 인터넷 열린 게시판에 난리가 났단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일러준 게시판에 허둥지둥 들어가 보았다. 사연인즉, 예방접종을 하려고 동네 병원에 갔었는데 10분이 지나도록 의사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화가 나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아직 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격한 어투로, 병원 이름까지 밝히면서 이런 오만방자하고 몰상식한 의사는 마땅히 법에 따라서 엄중하게 처벌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뒤를 이어서 이런저런 자기 경험담에 덧붙여서 함께 비난과 분노를 터뜨리는 글들과 너무 침소봉대하지 말자며 나무라는 댓글이 줄줄이 엮어져 있었다.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라는 자책감과 피치 못할 곡절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자문을 하고 병원 직원들에게 확인도 해보았지만 못내 황당할 만큼 당황스러웠다.
어느 하늘 눈부시고 바람 살가운 봄날에, 늘 그렇지는 않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진료실에서 화라도 난 것처럼 뚱한 얼굴의 우울한 동네 의사를 만나면 같은 이웃으로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쳇바퀴를 돌고 돌아야만 하는 다람쥐에게 너무 밝은 햇살이 때로는 감당키 어려울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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