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비/장만영

順伊(순이) 뒷山(산)에 두견이 노래하는 사월달이면

비는 새파아란 잔디를 밟으며 온다.

비는 눈이 水晶(수정)처럼 맑다.

비는 하이얀 眞珠(진주) 목걸이를 자랑한다.

비는 垂楊(수양)버들 그늘에서

한종일 銀色(은색) 레에쓰를 짜고 있다.

비는 대낮에도 나를 키쓰한다.

비는 입술이 함쑥 딸기 물에 젖었다.

비는 고요한 노래를 불러

벚꽃향기 풍기는 黃昏(황혼)을 데려 온다.

비는 어디서 자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順伊 우리가 촛불을 밝히고 마주앉을 때

비는 밤 깊도록 窓(창) 밖에서 종알거리다가

이윽고 아침이면 어디론지 가고 보이지 않는다.

봄비는 사월의 신부. '은색 레에쓰' 달린 웨딩드레스 자락 끌며 '새파아란 잔디'를 밟으며 사뿐히 걸어온다. 수정처럼 맑은 눈빛으로 그윽이 들여다보며 딸기보다 더 달콤한 붉은 입술로 '함쑥' 입을 맞춰준다. 연초록 수양버들 가지 아래 떨어지는 빗방울은 신부가 뜨는 은색 레이스. 레이스 덮인 다탁에 무릎 맞대고 앉아 소곤소곤 이야길 들으면 '벚꽃향기 풍기는 황혼'은 고즈넉이 스며들겠지. 두운에 맞춰 나란히 정렬해놓은 문장은 한겹 한겹 벗어내리는 비의 속치마. 그러나 아침에 문득 눈떠 바라보면 '순이'도 밤새 종알대던 신부도 옆에 없고, 못다 꾼 꿈처럼 빗방울만 속눈썹 끝에 매달려 대롱대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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