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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브룩클린의 위대한 한국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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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신유목민시대'라고 합니다. 직장 때문에 부부가, 공부 때문에 아이가 학원으로 유학으로 떠돌이 되고, 뿔뿔이 다 흩어져 사니 유목민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시대에 뉴욕의 브룩클린, 한자리에서 25년간 동네 사람들의 응접실이 되고 동네의 심장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준 세탁소가 있어 그 이야기가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 크게 났습니다.

그 집 안주인 박경자(오안나)씨는 브룩클린 검찰청에서 '2008년 위대한 여성상'을 받았습니다. 그 전에도 그 집은 유명했습니다. 일본의 NHK 방송은 브룩클린을 취재하면서 그 세탁소를 가장 먼저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세탁소가 있는 건물의 주인이 바뀌어 월세가 세배로 올랐습니다. 박씨는 그 월세가 힘들어 세탁소 문을 닫으니 각자의 물건을 찾아가라는 광고를 문에 붙였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1천69명이나 문을 닫지 말라는 서명을 했습니다. 동네의 홈레스(노숙자)까지 그 집이 없으면 안 된다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나서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었습니다.

"앤 아줌마(미세스 오 안나)는 내가 여덟살 때 나의 첫 영성체 드레스를 입혀 주며 '천사 같구나'라고 말해 나를 천사가 되게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무도회에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아 짜증이 나는데, 엄마의 드레스를 내 마음에 맞게 고쳐 주시고 '나의 공주님, 같이 가는 왕자님이 황홀해하겠습니다'라고 말해 그날 우아하게 그 밤을 보냈습니다."

옷만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늘 함께해 준 '앤'을 그들은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나는 한국을 좋아합니다. 앤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어떤 여인은 어머니 장례식 날 까만 옷을 밤새 고쳐 주고 죽까지 들고 와서 위로해 주었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래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송별파티가 또 화제가 됐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단촐하게 하려던 것이 참석자들이 많아 유대교 회당으로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유대교의 랍비가 개회사를, 신부님이 기도를 했습니다. 이 풍경도 재미있습니다.

이날 뉴욕시장이 감사장을 보내왔습니다. 또 브룩클린 검찰총장도 참석해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100년도 넘은 브룩클린 다리를 건너면서 사람들은 앤을 떠올립니다. 모든 이에게 모두가 되어 준 사람, 그녀가 바로 진짜 성공한 한국인이 아닐까요.

봄 햇살이 그녀처럼 따스하게 브라운 스톤 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백영희 시인·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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