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영섭의 올 뎃 시네마] 경축! 우리사랑

봉순씨의 뻔뻔한 사랑이 시작됐다

51세의 아줌마가, 30세의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건넛방 하숙생이었고, 자기 딸의 약혼자였으며, 동네가 다 아는 총각 구상을 봉순은 대담히 연애를 걸고 단숨에 자빠뜨린다. 그야말로 '아내가 결혼했다'이며 '바람은 미친 짓이다'의 수준인데, 그런데 영화 제목은 이 사건을 '경축!'이라고 표현한다. 새로 나온 영화 '경축! 우리 사랑'. 영화를 보고 나니, 충무로와 대한민국의 의식 수준의 변화가 지각변동이란 생각이 든다.

엄마손 하숙집의 봉순은 평생 빈둥거리는 남편을 대신해서, 틈틈이 노래방 일을 돕고 남는 시간엔 봉투에 풀이라도 붙여가며 생활하는 억척 여성이다. 그런데 어느 날, 딸 정윤은 세탁소를 하는 하숙생과 연애를 하며 결혼을 선언하더니, 취직이 되자 훌쩍 동네를 떠난다. 버려진 사윗감 구상은 매일 술타령으로 괴로워하고, 어느 날 술에 취한 그를 둘러업고 오는 길에, 문득 이 남자가 사윗감이 아닌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딸의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할머니, 로저 미셸 감독의 영화 '마더'가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어머니에, 아내에, 아줌마의 육체 위에 진한 성적 욕망을 포개놓는다. 하지만 진중하고 사색적인 일면이 있는 '마더'와 달리, '우리 사랑'은 따사롭고 상큼하다. 구상과 봉순이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장면은 그 옛날 심은하와 한석규가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정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일 정도.

그러면서도 영화는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한, 느슨한 가족 제도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배짱도 함께 부린다. 중요한 것은 구상과 봉순의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봉순의 '집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중년 여성들의 일탈을 다룬 한국 영화는 여성의 외도를 집 밖으로 내몰고, 그 행위 자체를 탐미적으로 포장하는 쪽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경축! 우리 사랑'은 가정 해체의 수순을 밟아 가던 한국 여성 영화의 어떤 공식에 중대한 도발을 감행한다.

처음에 남편은 밥상을 엎고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고 하소연이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봉순은 우직하게 한 집안의 경제적 주체로 가정을 꾸리고, 결국 남편은 딸에게 '우리가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가족이니까'라고 다독이는 수준에 이른다. 영화의 마지막, 딸은 그런 엄마의 아이를 둘러업고 엄마의 외도를 반승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경축! 우리 사랑'의 우리는 봉순과 구상의 우리이기도 하지만, 봉순과 남편, 혹은 봉순과 딸의 '우리 사랑'일 수도 있다는 기이한 상상마저 든다.

그리하여 우리 사랑의 강력한 전염력은 이 외지고 땀 냄새 물씬 나는 꼬방 동네에 온통 입소문 눈소문으로 퍼져나가며, 여기저기서 담장 너머 동네 여성들 헛구역질하는 소리 드높다. 현실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판타지로 처리했지만, 감독은 모든 에로스는 즐거워야 하며, 그 안에서 여성들의 싱싱한 생장점의 싹을 자를 수는 없다고 말을 건넨다.

특히, 이 대담하고 흥미로운 영화에 얼굴을 찌푸리는 대신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타이틀 롤에 가장 먼저 이름을 박은 중년 연기자 김해숙의 열연일 것이다. 쉰 넘어 동네 총각의 아이를 임신하고도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거나, 딸이 임신한 봉순에게 구상의 아이인지 어떻게 아냐고 묻자 '이 나이 되면 한번만 해봐도 다 알아'라고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엔, 관객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포스가 작렬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에는 여자가 되고, 종이 봉투에 풀을 바르는 순간에는 다시 억척스런 엄마로 되돌아와 있는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마시는 주스 한병에도 헤벌죽하게 입이 벌어진다. 그 순진함, 그 가녀린 떨림에 관객들 역시 우리네 어머니에게 은근슬쩍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마흔여덟의 나이에 늦깎이 감독이 된 오점균 감독에게 '경축! 감독 데뷔'의 전보를 보낸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예감. 훗날 대한민국에서 여성 영화를 연구하게 될 때 빠짐없이 언급될 운명이 바로 '경축! 우리 사랑'은 아닌가.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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