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28일 부통령 이기붕 일가가 자살했다.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였던 육군장교 이강석이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 강욱을 권총으로 쏘고 자신도 자살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지 이틀 뒤였다.
이기붕은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 이승만의 러닝메이트로 출마, 부정선거를 통해 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시위대가 이기붕의 서대문 자택을 포위하자 부통령을 사임하고 신변에 위협을 느껴 경무대로 피신했다가 경무대 제36호 관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1896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기붕은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오와주 데이버대학을 졸업했다. 그후 뉴욕에서 허정 등과 교포신문인 '삼일신문' 발간에 참여하기도 했다. 1934년 귀국해 이승만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 서울시장, 국방부 장관, 민의원 의장 등을 지내며 자유당 정권의 제2인자로 군림했다. 그는 장남을 이승만에게 양자로 주었을 정도로 이승만과 사이가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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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관리부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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