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국부를 늘리는 과정서 경제적 약자에게 부담이 가중

얼마 전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한나라당의 열렬한 지지자이셨다. 소위 '10년 좌파 정권' 시절, 한 번은 큰아버지께서 큰 소리로 '유시민은 빨갱이'라고 외치신 적이 있다. 음복 술을 한 잔 마신 취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만 큰아버지께, '유시민은 빨갱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자에 가깝다'고 진언하고야 말았다. 나는 이 경솔함을 영원히 후회할 것 같다. 왜냐하면 큰아버지는 귀천하신 그날까지, '빨갱이의 선동에 넘어가 버린 조카'를 걱정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애석한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큰아버지의 생각은 단연코 잘못된 것이다. 개인적 호오를 떠나 유시민은 분명 빨갱이가 아니다.

결론은 명료하다. (자유)무역에 참여함으로써 '모든 나라'의 국부가 증진되고 모든 나라의 국민이 더 높은 복지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이론적으로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이것을 의심하고 논박해 봐야 별 의미가 없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돌베개/350쪽/1만2천원.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자유무역(FTA)을 찬성하는 빨갱이 따위는 없다. 그러나 유시민은 자신의 저서에 FTA의 이점과 합리성에 대해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대한민국의 각 도와 광역시가 각기 다른 시, 도에 대해 배타적인 관세를 때린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몰락할 것이라는 거다. 크게 보아 전 세계가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유무역을 한다면, 세계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거란 것이다. 물론 인터내셔널 빨갱이 진보신당도, 민족주의 빨갱이 민노당도, 이 따위 이론에 전혀 찬성하지 않는다. 전혀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오늘도 한미 FTA 저지의 마지노선 격인 '미친 소 전선'의 촛불을 켠다.

이것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에 직면한다… 노동자들은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실업자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일을 위해 재교육을 받아야 하며, 익숙한 환경과 결별하고 낯선 거리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가족들에게 이것은 생존권의 위협을 의미한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상동.

우리 큰아버지가 유시민을 빨갱이로 착각한 것은 유시민이 같은 책에서 저런 '빨갱이스러운'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10년 좌파 정권'의 실체는 '온건 우파'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국부를 늘려, 자주국방하고, 북한 좀 돕고, 복지를 늘리자. 이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유시민 스스로도 지적했듯이, 국부를 늘리는 과정에서 그 부담이 경제적 약자에게 거의 집중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을 경제적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 국민들은, 국부를 왕창 늘리는 달콤함에 선뜻 투표해 버린다. 나는 그래서 전국 3%의 지지도 못 얻는 진짜 빨갱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그들이 지금 '생각보다는 덜 미친 소'에 절박하게 시위하는 이유는 사실상 이것이 그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이기 때문이다. 이 패닉의 국면이 끝나고 나면, 우리 국민은 다시 '얼굴 모르는 농민 몇만명 죽어도 경제만 살아나면 좋을' 사납고 매정한 자유대한의 국민으로 되돌아 갈 것이 아닌가 말이다.

박지형(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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