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앵두/고영민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쉥,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간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샴푸향기 풍기는 긴 생머리,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맨살 다리. 가랑이를 오므리고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쉥,'하고 골목을 누비는 빨간 화이바 아가씨. 성호세차장에도 성동부동산에도 터질 듯 부푼 청춘을 배달하는 스쿠터 아가씨. 곁에 달라붙어 '부릉부릉' 조르고 투정하며 애교를 던지는 파랑새. 뻔하고 뻔한 삶, 나른하고 심드렁한 일상이 지배하는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도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딸기농장, 참외비닐하우스의 '흙먼지' 길을 가로질러 새참 대신 커피를 배달하는 아가씨. 풀죽어 축 처진 시간에 허연 허벅지로 일터에 활기를 불어넣는 아가씨. 그 아가씨들이 쓰는 빨간 화이바가 앵두를 닮은 건 당연한 일. 앵두보다 더 탱탱한 청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앵두는 정말 스쿠터를 타고 와 맺히는 건 아닐까.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장옥관 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1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55%로 직전 조사 대비 1% 하락했으며, 부정 평가는 36%로 2% 증가했다. 긍정적...
금과 은 관련 상장지수상품(ETP) 수익률이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과 실물시장 공급 부족으로 급등하며, 국내 'KODEX 은선물 ET...
방송인 박나래와 관련된 '주사이모' 불법 의료행위 논란이 확산되며, 유튜버 입짧은햇님이 직접 시인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입짧은햇님은 '주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