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종이 경쟁력이다]재래돼지 '지례 흑돼지'

"고기가 차지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큰 잔치를 열면 으레 잡는 것이 돼지였다. 그 무렵 돼지는 하얀 색보다 까만 색이 많았다. 그러나 외래 돼지에 밀려 옛날에 봤던 까만 돼지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조선농업편람'에 따르면 "토종 돼지는 머리가 길고 털은 검은 색에 짧고 윤이 나며 덩치는 왜소하고 고기맛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적합하며 체질도 강건하다"고 했다.

'한국종'으로 일컬어지는 재래 돼지의 특징을 조금 더 살펴보자.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가 1989년에 펴낸 '한국재래가축의 유전적 특성에 관한 조사연구'에 한국종이란 이름 아래 재래 돼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모색(毛色)은 흑색이고 체구는 작으나 허리와 배가 아래로 처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사육해온 덕분에 우리의 기후, 풍토에 잘 적응하고 있어 체질이 강하고 질병에 대한 저항성도 강하며 조사료의 이용성도 양호하다. 그러나 한번에 낳는 새끼 돼지의 수가 7,8마리 정도이고 성장률과 도체율이 낮아 경제성이 떨어지므로 과거에 버어크셔종으로 누진 교배시켰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강화돼지'제주돼지'사천돼지'지례돼지 등의 명칭이 남아 있는데, 이들 지방돈에는 한국 재래종 돼지의 혈액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김천 지례의 흑돼지는 강원도 명파돼지, 전북 장수돼지, 합천돼지, 강화도돼지, 제주 흑돼지 등과 함께 재래 돼지의 희미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존재다. 현재 지례에서 흑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10여가구로 사육두수는 3천여마리에 이르고 있다. 한 때는 잘 자라는 서양 돼지를 선호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흑돼지의 맛이 알려지면서 사육농가가 점차 느는 추세다. 농가에서 키운 흑돼지를 판매하는 전문식당은 18곳. 면 소재지인 교리 반경 수백m에 16곳, 조금 떨어진 신평1리, 도곡2리에도 여러개가 자리하고 있다.

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흑돼지농장가든'을 운영하는 임순태(49)씨는 흑돼지 800여마리를 직접 키우면서 식당을 겸하고 있다. 15년 전부터 흑돼지와 인연을 맺었다. "흑돼지는 강인한 성격에 병에도 강해 우리 민족과 많이 닮았어요. 지례 흑돼지가 전국에 많이 알려지고, 판로도 늘어나길 바랍니다."

지례 흑돼지의 가장 큰 매력은 그 맛이다. 숯불에 잘 구운 고기의 맛은 담백하고 고소하고 쫄깃하다. 다소 질기다는 손님들도 있다지만 "고기가 차지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다른 돼지고기와 달리 흑돼지는 껍질과 비계를 그대로 구워도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다. 살코기보다 비계가 더 쫄깃하다는 손님들이 많다.

지례 흑돼지는 왜 맛이 있을까? 사육농들은 물과 공기에서 그 비결을 찾는다. "전통 똥돼지에 제일 가까운 지례 흑돼지는 철분이 많이 함유된 지하수를 먹고, 공기가 좋은 곳에서 자라 고기 맛이 특별하지요. 지례 흑돼지를 같은 사료를 주고, 다른 곳에서 키울 경우에는 고기 맛이 훨씬 떨어집니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1927년에 발간한 '조선'이라는 잡지에는 "지례돈은 골격이나 육질 모두 다른 종에 비할 수 없이 우수하다"고 서술할 정도로 옛부터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지례 흑돼지는 서양종에 비해 크기가 절반에도 못미치다는 등의 이유로 퇴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맛은 둘째이고 다른 품종에 비해 덩치가 3분의 1에도 못미쳐 먹이만 축내는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던 까닭. 그렇게 김천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차 잊혀져 갔던 지례돼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계기는 1980년대 후반 이 마을 출신 40대 마을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된 지례돼지 복원작업 덕분이었다. 최근 김천시는 지례 흑돼지를 전국 최고의 축산물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로 하고 지역 특화사업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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