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젠 品格의 사회로] ③죽음, 비극에서 품격으로

"출생의 축복엔 영면의 조건이…"

고대로부터 인간은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사멸의 운명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명확한 답도,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답이 없습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

영화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중년 남자 사에키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에키는 죽기에는 이른 나이인 49세에 새파랗게 젊은 의사로부터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야멸치게 쏘아붙입니다. "당신 우습네…. 당신 몇 살이야? 의사 된 지 몇 년 됐어?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거야? 병을 발견해서 기쁜 거야?"

사에키는 야멸친 말로 젊은 의사를 비난합니다. 그리고 진료실을 뛰쳐나와 달려간 곳은 병원건물 옥상입니다. 모멸적인 비난을 받은 젊은 의사는 그를 쫓아 옥상으로 달려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사에키상, 저는 아직 경험이 적지만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현재까지 알츠하이머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약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사에키상에게는 사에키상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인 동시에 죽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에키와 그의 아내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에키 부부는 죽음이 살아온 날들을 짓밟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죽음을 삶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어려운 일이고 갖가지 위기에 봉착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성공했고 덕분에'함께 살아온 날들'을 지켜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예수회 신부이자 심리학자인 헨리 나웬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당신이 떠난 후에도 계속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이 사랑했던 것을 사랑하고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귀한 가치를 우리가 기억하고 지키겠노라는 다짐과 고백 속에서 조용히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일대학교 임상외과 교수인 셔윈 널랜드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에서 '품위 있는 삶'을 살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힘든 일이지만 죽음을 삶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야말로 '삶'을 지키는 파수꾼일 것입니다.

◆마지막 정리기간 필요

아기의 탄생을 앞두고 부모가 될 사람들은 많은 준비를 합니다. 음식을 가려먹고, 보고 듣는 것을 가리고, 생각을 가려 합니다. 예쁜 옷가지와 아기용품도 준비하고, 미래의 생활 계획도 찬찬히 살핍니다.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2006년 3월 엄지호 경상북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은 폐암말기인 지인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렸습니다. 담당의사도, 주변의 지인들도 감히 그 말을 꺼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른바 '총대'를 멘 셈입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환자는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보름쯤 남긴 날부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지호씨를 만나지도 않겠다는 고인은 엄씨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유품 정리와 진 빚을 어떻게 갚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올해 1월 한 20대 말기 암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가족과 함께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숨진 일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2001년 근섬유종육종암 진단을 받은 뒤 7차례 이상 수술을 받았고, 지난 7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왔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죽기 전에 '가족과 함께 설악산을 여행하고 싶다'고 밝혔고 간호를 맡은 담당 수녀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음이 자신의 삶을 파괴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청년은 여행을 앞둔 크리스마스 파티 때 '지금, 가장 많이 웃어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여행이었지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설악산 여행은 그에게 남다른 기쁨을 주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정답은 없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는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그 고통은 부당한 징벌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았던' 우리가 작별하면서 치러야 하는 정당한 대가인지도 모릅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