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장 피에르 레이노전 外

15일까지/서울 학고재 화랑

▲ 학고재에서 초대전을 갖고 있는 장 피에르 레이노 작
▲ 학고재에서 초대전을 갖고 있는 장 피에르 레이노 작 '화분'.

타타르키비츠의 정의를 빌리면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는 기쁨이나 감동 아니면 충격 이 셋 가운데 무엇이다. 비록 가마솥 같은 더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전시장을 찾아 예술가들이 이뤄낸 뭔가 기적과 같은 일들을 보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안젤름 키퍼전으로 주목을 받았던 국제갤러리가 이번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를 초대했는데 1, 2층 전시실에서 주로 물을 모티프로 한 그의 작품 10여점이 상영되고 있다. 쏟아지는 물의 장막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물보라의 시각적 효과와 그때의 음향, 그리고 그 경계면을 지나는 인물의 표정과 동작 등이 영상의 내용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들이지만 그것이 표현하는 메시지는 심오하다. 특히 초정밀성을 자랑하는 고화질 화면과 숨을 죽이게 하는 음향효과는 관객들의 혼을 앗아갈 정도라고 하면 과장일까. 2006년 가을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있은 개인전에서 특히 Crossing이란 작품을 보고 그런 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의 영상과 심오한 상징은 현대미술의 이 새로운 매체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강력한 힘을 각인시켜 놓기에 충분한 것으로 생각된다.

국제갤러리와 나란히 있는 학고재 화랑에서는 요즘 모 은행의 광고에 등장하는 화분 모양의 설치 조각의 작가 장 피에르 레이노전이 열리고 있다. 단순하며 무미건조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 화분의 배경을 알고 난 후에 그 의미가 새로워지기도 했지만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비디오 한 편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감동을 안겨준다. 작가는 화분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기호들을 가지고 주로 작업을 하는데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백색 타일도 중요 모티프의 하나였다. 그는 사각형의 흰 타일로 자신이 살던 집안 내부를 붙여나가며 23년간 다섯 차례 정도 집이 변모해가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제작해 상영한다. 거기서 작가는 살며 대화하며 자신을 표현했던 그 집의 새로운 변형과 갱생을 위해 결국 파괴를 결정하고 포클레인에 의해 부서지고 붕괴되어 일어나는 흙먼지와 잔해들의 퇴적을 지켜보며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고 기록했다.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아마도 관객들은 예기치 못한 장면이 펼쳐진데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벽돌과 타일의 파편조각들을 스테인리스 금속제의 그릇에 담는 모습에서, 또 그것들을 보르도 미술관에 옮겨 전시해 놓은 장면에서 말문이 막혔다. 비감한 음악과 함께 그 장면은 어떤 무명용사 묘지의 끝없이 펼쳐진 하얀 십자가를 떠올리게 했다. 또 다른 기적의 공간은 거기서 멀지 않은 성곡미술관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척 클로스의 판화전이다.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집중적인 노동과 지난한 시간의 소모 없이는 불가능한 그야말로 불가해한 작업들을 참관할 수 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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