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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노란띠 먹었어" 발달장애아들의 태권도 승단 심사

▲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화니어린이집 아이들이 4개월 동안 익힌 태권도 실력을 엄마들 앞에서 뽐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화니어린이집 아이들이 4개월 동안 익힌 태권도 실력을 엄마들 앞에서 뽐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건영·국영(8) 쌍둥이 형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자리에 잠시도 앉아있질 못했다. 너무 산만해 집중하지 못하는데다 자제력도 부족해 엄마가 늘 신경을 써야했다. 그러던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면서 확 달라졌다. 엄마 정향남(39)씨는 "음식을 가리지 않아 체중조절에 신경 쓰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집중력도 높아졌고, 스스로 참을 줄도 알게 됐다"고 했다.

10일 오전 10시30분 대구 수성구 지산동 '송암태권도 아카데미'. 도복을 입은 20명이 태권도 승급심사를 받기 위해 지정된 자리에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너무 들떠서 천진난만한 표정까지 짓는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화니어린이집 원생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던 아이들이 이날 4개월 동안 배운 태권도 실력을 엄마들 앞에 뽐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 일어서." 우렁찬 사범의 구령과 함께 승급심사가 시작됐다. 평가 사항은 발차기와 송판 격파. 품새나 대련으로 진행되는 일반 승급심사와는 달랐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쉽지않은 과제였다.

"서서 차." 수줍어하던 병훈(5)이가 오른쪽 다리를 뻗어 사범이 쥐고 있는 샌드백을 힘껏 내찼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 발을 바꿔가며 정확하게 목표물을 차자 환호성이 터졌다.

혼자 앉아 있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그동안 열심히 단련한 결과다. 대희(8)가 "얏"하고 기합을 넣더니 앞에 놓인 송판이 두동강 났다.

사회복지법인 화니재단 손영미 대표는 "태권도가 아이들을 바꿔놓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권도 도장에 첫발은 내디딘 것은 지난 3월. 수성구태권도협회와 화니재단, 수성구청이 협약을 통해 장애아들에게 무료로 '태권도 교실'을 열면서였다. 아이들은 그동안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일반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데다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해 사실 받아주는 곳도 거의 없었다. 태권도협회는 도장 관장들을 선발해 자원봉사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고, 구청은 간식비 등을 지원하며 다리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3월부터 매주 화·목요일 1시간씩 단련을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말문이 트였고, 신체적·정신적으로 변화가 보였다. 오성욱 사범은 "늠름해진 아이들이 처음에는 도복을 입지 못했고, 주위가 산만해 가만히 있지도 않고, 울거나 소리를 내질렀던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승급심사 전원합격. 아이들은 '노란 띠'를 허리에 차며 "다음은 파란 띠를 딸 차례"라고 각오를 다졌다. 수성구태권도협회 김종덕 회장은 "아이들이 이번 경험을 기회로 잠재된 역량을 힘껏 날갯짓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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