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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소설가 이문열…너털 웃음 뒤에 묻어나는 묘한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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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60).

그는 어눌한 말로 유명하다. 말하는 것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어수선해 보이지만 그래도 논지를 덤벙덤벙 뛰거나, 놓치지는 않는다. 웃을 때도 그늘없이 큰 웃음을 짓는 편이다.

이문열 하면 '보수 논객'이 떠오른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불장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데게 된다. 촛불장난도 너무 오래 하는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작가가 논쟁의 한가운데 서기란 쉽지 않다.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책 팔아먹고 사는 책쟁이'가 잠재적인 소비자들을 외면하고, 그들이 쥔 불 한가운데 기름을 끼얹는 꼴 아닌가.

더구나 그가 보수에 몸을 싣는 것도 의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북을 선택한 아버지 때문에 남한에서 온갖 고초를 입었다. 원한이 있어도 남쪽에 더 있어 보이는 이력이다.

지난해 취재차 경기도 이천에 있는 그의 부악문원에 간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연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이원철)는 월북한 지식인이다.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로 서울 휘문고보 졸업 후 일본 유학시절 좌익에 경도된 열혈청년이다. 해방이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고, 박헌영·이현상 같은 남로당 인사들이 그의 집에 드나들 정도였으니 거물에 속했다.

전쟁이 터지자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북을 선택했다. 이후 남은 가족의 고초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는 "북의 아버지는 승승장구 잘 살고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1954년 북한 함경도 종성의 한 협동농장의 평 농장원이었다. 일본에서 유학까지 한 선진 농업경제학자로는 초라한 직책이다. 거기다 젊은 아내와 가족을 버리고, 또 많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찾아간 공화국이 아니었던가.

그는 "아버지를 그렇게 대접한 것에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했다. 거기다 북한의 가족들도 남한처럼 연좌제에 걸려 고초를 겪었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적으로 용서가 안 되는 일"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보수에 몸을 실은 이유가 비단 이뿐일까. 그래도 큰 단초는 되었을 것이다.

화가 권기철이 그린 머리 희끗한 작가 캐리커처에 비친 웃음. 거기에 묘한 그늘이 묻어나는 것은 슬픈 전쟁을 치른 우리 모두의 초상은 아닐까.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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